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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관림기 두 반가사유상의 만남 외


 

진짜 오랜만에 포스팅을 하는 것 같다. 일단 포스팅 안 하는 것은 내 귀차니즘이 1차적이고 2차적인건 역시 포스팅을 뭘 해야하나가 고민이다. 이건 1차적인 이유에서 못 올린거다. 일단 내용 자체는 6월 중순에 했으나 내 귀차니즘과 여러가지 이유로 이걸 못썼다.


 

근 한달 중 전시 및 공연계 최고의 떡밥은 뭐였을까? 공연 쪽은 무언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전시는 명확하다. 국보 78호 반가유상과 일본 주구사의 목조 반가유상의 동시전시회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었다. 국보급 그것도 일본과 한국의 반가유상이 동시에 전시 되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며 근 10년내론 이런 전시회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모든걸 무릅쓰고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했다.


 

주말인지라 가족전시객이 엄청 많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대부분의 가족들은 4호선으로 가서 서울랜드를 가려는 것 같고 박물관으로 가는 인원은 굉장히 드물었다.


 

이런저런 생각하며 국립중앙박물관을 눈앞에서 봤는데 역시 드는 생각은 다섯번째 보지만 여전히 크다 라는 것이다.


 

정말 크다. 동아시아에서 유물 숫자도 제일 많고 제일 클 뿐더러 구석구석 볼 것이 많다. 정말 제대로 보려면 하루는 그대로 날릴 각오를 하고 봐야 할 것이다 .얼마나 대단한지 선사부터 근대까지 한 층에 있으니 역사를 쭉 훓는 느낌이다.


 

물론 내 주 목적은 상설전시장을 보는 것이 아닌 특별 전시장을 보는 것인지라 국립중앙박물관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특별전시장으로 들어갔다. 역시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입장료지만 다행히도 없다니 뭐 바로 들어가서 보았다.


 

그리고 목조반가유상을 보고 든 생각은…. 없었다. 이건 내가 말을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인지밖의 영역에서, 또한 내가 말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인데 어떻게 말로 표현할까, 그래도 시간이 약인 법 경이의 순간에서 다시 현실의 영역으로 돌아오는 최고의 방법이다. 이제 목조반가유상을 인지의 영역에서 바라볼 때인 것이다,


 

그리고 쭉 보는데 놀라운 것은 이음새가 정말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분명히 이음새가 있을 텐데…. 뭐 안보이는 걸 굳이 찾긴 그렇고 여튼 그냥 쭉 한바퀴 돌면서 감상하였는데 역시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앞에 있는 금동반가사유상을 보러 갔는데 드는 생각이 이 공간이 참 신기하단 것이다. 두 반가유상을 같이 봄으로서 불교가 말하고 싶은 절대자가 무엇일까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절대자로 향하려는 건지 그것까진 모르겠지만 분명한건 이 불상의 형태로 나타난 그들의 신앙심은 참으로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이제 반가사유상을 뒤로 하고 상설전시장을 보러갔다.


 

`…


 


 

윗 사진들은 특별전시장을 나오면서 특별전시장 앞에 있던 사진들을 찍은 것이다.


 

그리고 이 박물관을 보면서 든 생각이 하나 더 있었는데 다섯번째 오는데 못 본 구석을 보고 싶단 생각이 들어서 먼저 어린이 박물관이란걸 한번 보고 싶었다. 하지만 시작시간은 이미 지났고 거기다가 이걸 본 뒤에 바로 갈 곳이 있는지라 못봤고, 공연형식인지라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제 상설전시장을 보는데 두가지 이벤트가 있었다. 첫번째는 벼락도끼와 돌도끼였고 두번째는 최순우가 사랑한 전시품이란 이름으로 전시중인데 첫번째는 1층 전시장에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으며 최순우가 사랑한 전시품은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장 구석구석에 있다 그리고 그 전시품에는 팻말이 있는데 그걸로 이 이벤트의 전시품인지 알 수 있다.


 

1층부터 돌기 시작헀는데 굉장히 신기한 것이 구석기가 확 끌린단 것이다. 안그래도 요즘 카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가 끌리긴 하다. 정말 그 노래를 들으면 원시시대와 같은 야성미와 함께 당장 커다랗고 뼈에 꽂혀져 있는, 우리모두가 상상하는 그런 선사시대의 고기를 불에 구워서 먹어야 할 것 같은 야성의 느낌을 주는 노래인데 정말 구석기와 맞는 노래이다.


 

저 땐석기들을 보라 저 석기들의 모양은 새련되지 않았다 야성 그대로다 돌을 떼어내고 살짝 갈아낸 것 밖에 혹은 그런 것도 없을거다. 그러기에 그 석기들의 야성미가 넘쳐나는 것일 거다. 참으로 재밌다. 갑자기 구석기가 새롭게 보이다니, 이렇게 구석기를 새롭게 보다가 신석기를 봤으며 고구려 백제 신라는 열심히 지나치다가 갑자기 신라에서 생각난 유물이 있어서 다시 돌아갔다. 금령총에서 발굴된 기마인물형토기를 다시 쭉 보러갔다. 굳이 다시 본 이유는? 없다. 하지만 정말 끌린다. 그 유물의 의미는 생각하지 않아도 정말 끌린다.


 

그리고 빠르게 빠르게 지나가다 고려관 부근에서 벼락도끼와 돌도끼 특별전시장을 봐서 들어갔다,


 

그리고 전시장을 쭉 보면서 생각한게 확실히 신석기와는 다른 것을 느꼈다. 신석기는 이제 야생의 시대에서 인간이 벗어나 세련됨을 생각하며 깎아 벼린 모양새다.


 





 

그리고 벼락도끼는? 와… 정말로 벼락이 돌산에 떨어져 생긴 잔해 그대로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로 그렇다면… 그 생김새가 참으로 재밌었고 고대 사람들이 뇌신의 무기라 생각했고 또한 오행 중 뇌의 정기라고 여긴 것도 그럴 만도 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러가지를 보면서 재밌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위층을 갈까 말까 하다가 그냥 잠깐 가서 돌고 그 다음은 3층을 가서 그래 딱 한작품 최순우가 사랑한 소장품 그거 한 개만 보고 가잔 생각이 들어서 봤는데 드는 생각은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단 것이다.


 

이 항아리다


 


누구는 그냥 항아리의 곡선정도 생각하며 분청사기에서 보이는 중성적인 미, 그리고 소박함을 보이지만 저 꽃의 그림은 나름의 화려함을 보여주려는 구나 정도만 생각하는데… 직접 보자


 



 


 

정말 이게 생각의 차이고 격의 차이다.


 

그리고 원래 내 성질대로 하자면 저 팻말 걸린걸 다 봐야겠지만 시간과 체력 문제로 바로 나왔다.


 

여전히 아쉬운건 외부의 많은 전시품들을 여전히 제대로 못 본 것이며 상설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것들을 미처 못 본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하지만 분명한건 이 박물관은 훌륭하며 질 좋은 유물을 한꺼번에 볼수 있는 곳이 드물며 이 곳은 접근성도 나름 괜찮은 곳이란 거다.


 

하지만 너무 아쉬운건 순환전시가 너무 안되는거 아닌가 싶다. 좀 하자… 좀…..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곳을 즐기자 만끽하자


어벤저스쿨-예수가 한국와서 고생한다


 



 

저저번주에도 과학관련해서 올렸습니다. 경영은 올리기 애매하고 강의 자료에도 외부유출 금지라고 적혀있었기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헬조선 특강 그 세번째 시간 이번에는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한 강의입니다.


 

뭐 기독교 관련된 기사나 이런게 언제 난리가 아니었겠습니냐깐 그래도 기독교인으로서 궁금하죠 우리의 종교가 문제가 있는건 인지한다 하지만 누가 체계적으로 설명해줬음 하는거죠 그래서 이번 강의를 듣게 되었고요


 

강사분은 김진호 목사님으로 성서역사학을 연구하고 계시는 분으로 최근 범주에서 이야기 되고 있는 학문이라고 합니다.


 

저도 정리가 힘든 관계로 거의 쭉 쓰는게 되겠습니다.


 

먼저 종교는 국경이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하지만 이 개념은 근대이후에 생긴 개념입니다. 국가는 국민, 국가의 언어, 경계가 있습니다. 국가는 경계가 있어야 성립되는 것이 국가의 개념이죠, 근대이전에는 굉장히 모호했습니다.


 

국경이 면의 의미로 즉 공간의 의미가 더 강했습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변경이란 단어가 쓰였죠 변경은 국가와 국가가 혼합되어있는 공간으로 굉장히 모호한 공간입니다.


 

근대이후로는 선의 의미로 국경이 바뀌었습니다. 선 하나로 모든게 달라집니다. 국가 기구, 시민권, 통장, 전화도 완전히 달라집니다 사이가 안좋아지면 비자까지도 있어야죠 선은 명확합니다


 


 

종교개혁은 근대를 시작하는 게기가 되었습니다. 즉 성서의 번역이 가능하게 된 시기로 이제 자국어로 성서를 번역하게 되었죠, 또한 활판인쇄의 시기도 이제 태동하게 되었습니다. 한창인쇄하기 좋았고 여기서 국어란게 생기기 시작합니다.


 

천주교가 찢어지면서 국경의 중요성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국경의 성이 생긴 것이고요 그래서 국경안의 사람들을 유지시키기 위해 특권과 국가 정체성이 생겼죠, 물론 전에도 있었습니다만 특권층에게만 쓸모있었을뿐 일반 국민에게는 전혀 필요없었죠


 

또한 모든국가의 인원이 결속력이 생기며 총화라는 개념이 생겼습니다.


 

또한 종교의 국경이 생김으로서 그것을 가르쳐야 하였는데 그게 바로 교리이다. 교리는 같은 종굘르 믿는 사람들의 모든 사람이 알며 공유하는 것이다.


 

동방정교는 성화나 설화로 대중에게 전파하는걸 선호하였습니다. 그리고 근대에 들어서 자국어와 공교육을 이용하였죠 이런 교리를 가르치는게 Sunday Scholl 즉 주일학교인거죠


 

그리고 이제 서양의 교리적 성격이 동양으로 넘어감으로서 동양도 서양종교화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불교랑 도교랑 그렇게 딱딱 경계선을 긋지 않았죠 하지만 어느샌가 긋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종교적 산물을 쉽게 전달할수 있게 되엇습니다. 사람도 물건도 국경을 굉장히 빠르게 넘을수 있게 되었죠 종교도 마찬가지 입니다. 동양의 종교가 서양으로 넘어가며 서양에서 굉장한 각광을 받게 되었습니다.


 

서양에 넘어간 동양종교는 더 이상 동양종교가 아니죠 다른 종교적 사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를 신종교현상이라 합니다. 예를 들면 명상이나 요가 같은 것입니다.


 

이는 믿는 사람에게도 적용됩니다. 간단히 예를 들면 기독교의 각 교단에서 집계한 숫자와 인구조사수와는 다릅니다. 이유는 물론 중복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중 하나는 spiritual하다 자신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 Spiritual은 자신이 기독교에 회의감을 느껴서 기독교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종교를 쓰기도 싫을 때 쓰는 것입니다. 물론 인구조사엔 그런거 없습니다만…


 

이제는 영성학이란 것이 생겼습니다 제도권 종교와 다른걸 다루는 학문도 생긴 것이죠


 

그리고 이제 멀티빌리버스라는 것도 생각해 볼만한 때입니다. 어떠한 종교를 가진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라 하죠 교회를 다닙니다만 명상을 하고 절에도 가며 템플스테이도 하고 굿도 합니다. 여러 종교에 존경심을 표하는 사람들이죠(제가 볼때는 문화를 소비하는걸로 보이지만요) 개신교도 숫자가 상당합니다.


 

신학도 그렇습니다 19세기까지는 오직 예수그리스도만 외치며 식민지를 만들면 그들의 문화를 짓밟고 죽였습니다 하지만 20세기에 세계대전이 일어나며 유럽인과 유럽종교의 자긍심에 엄청난 상처를 입게 되고 무너졌습니다. 그리하여 생긴 종교적 운동이 있습니다 에큐메니컬인거죠


 

물론 반성에 대한 것은 에반젤리컬이든 에큐메니컬이든 동일하였죠 분명한건 제 1, 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린 것은 이런 반성에 대한 의미인 것이었죠


 

또한 현대의 구원관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간단하게 말해 궁극적인 실체에서 하나님을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구원인 것입니다. 당신들이 어떤 종교이든 상관없단 것입니다. 현대신학은 이렇듯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교회의 역사로 넘어갈 때입니다.


 

한국 그리스도교 부흥의 때는 언제일까요 20C 초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서북지역 말하자면 평안도 지역인데요 여기엔 미국선교사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서북지역 지식인들도 기독교를 빠르게 받아들이기 시작하였습니다


 

한국에 들어온 교파는 장로교파인데요 이는 선교단체들이 임의로 여러 영역을 나눠서 각 교단별로 들어갔는데요 한국은 여기서 장로교단이 들어가는 걸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라면 이 한국에 들어온 장로교가 세계에서 제일 강성적인 교단이었던거죠 세상을 근본원리로 바꿔야 한다 말하니까요


 

참고로 서북지역이 어떤 지역이냐면 민족학교들의 한국 지도자들도, 미국간 엘리트들도 60%가 서북인입니다. 이런 서북 지식인 입장에서 근본원리란 굉장히 좁아보이게 들리는 것이죠


 

그래서 서북인들과 갈등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결국 이긴 것은 근본주의인것입니다. 이들은 철저한 갑의 정신을 가진 근본주의자죠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런 근본주의 입니다 전통과 불교는 다 때려부수고 베타적이며 억압적이고 폐쇄적입니다. 이런 교회교리가 성장한거죠


 

참고로 기독교는 여전히 1%수준이었습니다.


 

일제시대때 기독교를 보면 여전히 기독교인은 1%수준이었습니다. 특히 20년대의 기독교는 항일운동에 참으로 열심이었습니다. 근대교육도 빨리 받고 익혔으니까요 3.1운동때 민족대표 33인중 절반이 기독교인 것도 다 이유가 있는거죠


 

그런데 30년대엔 좀 달라집니다. 선교사들에게 한국이 일제에게 해방당하든 탄압당하든 뭔 상관입니까 그들에게는 모든게 귀찮아보이죠 그들은 한국을 복음으로 물들이는게 우선일 따름인데요 그리하여 기독교인들에게 일제랑 잘 지내라고 충고하기 시작합니다.


 

40년대에는 또 달라집니다. 바로 신사참배 때문인데요 이건 근본주의자인 선교사들에겐 절대 받아들일수 없는 일이었고 일제는 선교사들을 추방합니다. 물론 기독교인들도 받아들일수 없었죠 단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한 인원들 만요…. 나머지 기독교인들은 신사참배를 한거죠


 

이렇게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살아남은 인원들이 고신교단의 시작이 됩니다.


 

그런데 뭔가 웃기죠 근본에겐 신사참배는 이단행위인데요 그래서 사후적으로 신사참배가 항일 근거가 되는 해석을 합니다.


 

여튼 해방이후 북은 공산주의죠 공산당은 종교를 굉장히 싫어하죠 그리하여 탄압을 못견딘 서북의 청년들이 월남을 하였죠, 그런데 그들은 할일을 못찾았는데 그들을 고용한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서울 경찰국과 미군정등이었죠


 

이때의 미국은 메카시즘이 한창이었습니다. 거기다가 멕아더는 극우 반공주의의 상징이었죠 거기다가 멕아더의 꿈은 반공 기독교 국가였고요 이런 그에게 서북에서 공산당에게 탄압을 받고 가족을 버리고 온 청년들은 정말 좋은 수단이었죠 모티베이션도 좋고 여러가지로 다 좋으니까요


 

그리고 그들은 서북청년단으로 불립니다.


 

그때의 대한민국은 좌익사회였습니다. 멕아더가 보기엔 정말 아니었죠 거기다가 기독교는 친일까지 했네요 정말 지지받지 못하는 종교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였느냐 낮에는 합법적으로 밤에는 비합법적으로 탄압을 하였죠 거기서 비합법은 서북청년단의 영역이었고 그들은 언제나 기대이상을 해냈습니다.


 

그리고 그 서북청년단의 숙소가 영락교회였죠


 

여기서 한경직 목사가 제대로 등장합니다. 그는 미국 프린스턴에서 배우고온 엘리트였으며 당대의 지식이었습니다. 미군정의 통역원으로 시작해서 신임을 받기 시작한 한경직 목사는 일본이 놓고 간 종교재산을 물려받았고 이게 영락교회의 초기자본 재산이 됩니다.


 

이제 월남교회도 속속들이 생깁니다 ,하지만 영락교회를 따라갈 교회가 없었죠 엄청난 속도로 성장합니다., 20명에서 2천명이 되는덴 2년이 안걸렸습니다. 이는 영락교회에 서북청년단 숙소가 있었기도 헀지만 월남한 서북인들에겐 영락교회가 구심점이 된 것이죠


 

한경직 목사는 기독교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안타까운 점은 테러리스트들에게 살인하지 말라 말하지 않은 것이죠


 

하지만 한경직 목사의 대단한 점은 6.25때 정말 빨리 미국 기독교계에 알렸단 점이고 미국 기독교계가 압력을 가해서 이례적인 속도로 UN군이 참전하였습니다. 또한 전세계 구호단과 구호기금이 쏟아졌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저 구호기금이죠 과연 저 구호기금은 누가 받았을까요 6.25때 상황은 정부는 이리저리 피난다닌 시기였습니다. 제대로 안정이 되질 않았죠 마치 티뱃처럼요


 

먼저 미 기독교 기구가 돈을 받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처리를 할건 하고 이제 직접적으로 맞닿는 부분은 한국교회에 처리를 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돈도 중요하고 여러 정치 상황도 중요하지만 기독교에게 제일 중요한건 전도입니다. 과연 50년대 전도 상황은 어떨까요?


 

그때는 기독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부흥이 안됐습니다. 서북청년단의 영향도 그렇고요 거기다가 기독교계가 두눈을 부릅뜨고 모두를 쳐다보는데 국민전도는 정말 안됐습니다.오죽하면 구호단과도 싸웠겠습니까 한국기독교계는 선별해서 구호하자 했거든요…


 

54년 전후로 굉장히 가난한 사람들이 있지만 교회는 여전히 선별해서 구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들이 치료받고 구호받으려면 자신이 공산당이 아님을 증명해야 했고 기독교인이 됨을 그자리에서 시인해야했습니다. 여전했죠 선별된 구원


 

대중신학이 생기고 기도원이 생긴 시기입니다. 한국의 기도원도 생겼고요 한국의 기도원은 장난아닙니다. 오죽하면 체력딸려서 못간다는 분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저는 안가봤습니다)


 

북을 두드리고 소리를 지르고 이제 마지막으로 병나음까지 안수하면 이제 분위기는 걷잡을수 없습니다. 그대로 끝난거죠 광란입니다.


 

이게 앞으로 소개할 대중영성가의 힘이 큰거죠


 

이들에게 영성체험은 중요합니다 방언이 주이죠 또한 안찰기도를 합니다. 사람몸에 손을 넣어서 어혈을 뺀다느니 아님 다른사람을 두들기거나 때리기도 합니다. 이게 안찰기도 입니다., 아픈사람의 고통을 자신과 일치시킨단거죠


 

이런 치료는 세계 어디든 있지만 한국은 기독교가 이런 역할이었습니다 용어가 기억이 안나는군요…. 여튼 한국은 기독교가 이런 역할을 하였습니다.


 

또한 어떠한 대가와 구속 없이 그냥 해줬습니다 정말 놀라운거죠 한국 주류 기독교는 여전히 선별된, 정확히는 대중이 원하는 수준이 아닌 지원을 해준거죠 하지만 대중신학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잠시 유명한 대중신학자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박태선씨와 나운몽씨가 있습니다.


 

박태선씨는 남산 집회에서 5일간 70만명을 동원하였으며 나운몽씨도 만만찮았죠 나운몽씨는 그 시대에 앞에서 말한 현대적 신학을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운몽씨는 이단이라 여겨졌죠


 

그리고 나운몽씨는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마을과 마을에 대중사역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운몽씨의 제자중 아주 유명한 분이 등장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조용기 목사입니다


 

조용기 목사는 굉장히 유명하죠 정말 어찌됐든 전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한국인중 하나일겁니다. 조용기 신드롬은 전세계에서 현실이라죠….


 

순복음은 57년에 불광동에서 교회를 열었습니다. 달동네는 가난한 사람이 사니 질병과 화재는 매일이다. 거기서 교회를 열었으며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치유해주기 시작하였다. 오죽하면 두시간 걸어서 종로 인력시장에서 그 교회까지 걸어왔겠는가


 

조용기는 삼박자 구원을 외쳤다. 하나님 구원 병낫는 것 부자되는 것 그것이 하나다 그러면서 사역을 하였다. 놀라운거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이거다 순복음도 이단이었다. 그런데 언제 풀렸을까. 이는 유명한 미국교회였던 크리스털 교회의 목사였던 로버트 슐츠 목사가 와서 조용기와 악수한 순간 한국 기독교계는 이제 조용기를 인정하기 시작하였다.


 

여튼 6 7 80년대는 조용기시대였다. 정말로 말도안되는 부흥이니


 

그럼 한국 교회문화에 대해 말해보자 70년대를 중점적으로 말하곘다.


 

한국의 부흥회가 바뀐 시점도 이즈음이다 빌리 그레이엄이란 분이 우리나라에 왔다, 그리고 부흥회를 열었는데 하루에 100만명이 올때도 있었고 5일간 5백만이 온적도 있었다.


 

이때 그레이엄 목사는 멜로디 중심,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부흥회사가 업시키는 방법을 썼으며 한국의 기존 부흥회와는 또다른 문화를 만들어냈다.


 


 

또한 그때 교회에서는 문화개방이라고 하였다. 연극 댄스, 노래등등 거기다가 그때는 엄숙주의가 기본인 사회인지라 여자와 남자의 스킨십은 꿈도 꿀수 없었는데 교회는 가능했다 거기다 평소에는 통기타치고 노래하고 그래했다. 서부문화의 포인트이자 선망의 장소였다.


 

하지만 90년대 상승세는 꺾이고 선망은 사라지고 숨겨둔 치부는 드러났다. 또한 이때는 민주화의 시대였고 반미가 등장하였는데 교회는 반미주의자들이 보기에는 종미, 친미주의자였던 것이다.


 

또한 놀랍게도 우리나라는 바이블벨트(반낙태, 반동성애, 반 무슬림을 표방한다.) 의 가치가 정말 쌔게 통하였는데 지금 보면 안다.


 

이런데도 교회는 여전히 기득권 세력에선 잘 먹힌다. 여전하다 교회에 빚이 없는 그 박근혜 정부도 50%의 각료가 기독교인일 정도니…


 

한국기독교의 성격은 특이하다 정말 대형교회가 압도적인 나라이다. 메가처치의 기준을 보통 교인수 2000.명 이상이라 표현한다. 그런데 800만의 신도수인 나라에서 메가처치 수는 880개 미국은 다르다 1억명 신도중 1300개인데…


 

그에따라 교회간의 양극화도 날이가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오죽하면 교회안에서도 양극화가 있을까


 

예를 들자 대형교회에서 눈에 들려면 단기선교를 가야한다. 그런데 그 단기선교 비용이 정말 만만찮다. 300에서 500정도가 기본이다. 거기다가 3주정도는 가는데 훈련은 4주받는다. 7~8주동안 모든걸 스톱하고 거기다가 올인해야한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기본적으로 여기서부터 나뉜다.


 

거기다가 소망교회 대학부는 더 놀랍다. 거기에서는 단 4개의 대학만 있다고 한다. 서울, 고려.연세,이대 나머지는 쪽팔려서 말하지도 못한단다. 집이 부자인건 어쩔수 없는 기본이고 거기다가 교내결혼을 장려하기 까지 한다. 이건 정말…


 

이런 계층간의 문제는 사회의 공격을 받기 가장 적당한 것이다.


 


 

이런 기독교를 믿는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


 

우린 미안헤 할줄 알아야 한다. 땅밟기 같은 어이없는 무례한 짓을 한거에 우린 안했어도 사과할줄 알아야 한다. 내가 기독교인이란 이유 하나만으로도


 

행동할줄 알아야 한다. 미안하면 그걸 행동할 의무거ㅏ 있는것이다.


 

또한 종교인끼리의 대화에서도 관용과 굽힘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사회에도 부탁할 것은 기독교가 무례했던건 사실이다. 하지만 오지에서 마지막까지 지원하는건 기독교인이고 성소수자를 가장 지원 했던 것도 교회인이다. 너무 기독교를 잡아먹으려고만 생각하지 않아줬음 좋겠다.


 

마지막으로 기독교인들은 어떤 신앙이 의미있는지 생각해보고 좋은곳에 후원금도 내줬음 좋겠다.


 


 


 

여전히 정신없지만 그래도 다 썼습니다. … 정리는 할 시간도 없어서 안했습니다.


 

네 도움이 안되셨을지도 모르지만 모르시는 부분이나 틀린부분이 있으시면 물어보고서라도 고쳐보겠습니다. 수고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어벤저스쿨-뉴턴이 한국와서 고생한다


 



 


 

어떻게 올려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지만 결국 올립니다. 그런데 블로그 올릴거 생각 1초도 안하고 강의를 들어서 정작 올리려니 사진을 안찍었더군요… 흠…. 그냥 걸어놓은 사진 올리겠습니다.


 


 

먼저 어벤저스쿨은 인터넷 독립언론인 ㅍㅍㅅㅅ에서 제작해서 만든 강연이며 매달 커다란 카테고리 안에서 강사진은 계속해서 바뀌는 강의식으로 되어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저번달에는 크게 끌리는게 없어서 안들었는데 이번달엔 헬조선 카테고리에 워낙 끌리는게 많아서 그냥 패키지 신청을 해버렸군요… 흠.,… 솔직히 기독교쪽 듣고 말려고 했지만 제가 좋아하는 과학과 인문학이 있는데 따로따로 하느니 한꺼번에 패키지 신청하는게 이득이겠다 싶어서 한번 해봤고 어제가 이번달 처음 시작한 강연입니다


 

주제는 과학입니다. 현재 건국대에서 교수로 재임중이신 이종필교수께서 오셔서 강의를 해주셨는데요 현재 과학계 현실과 어떻게 하면 한국에서 노벨상이 나올수 있는가로 강의를 하셨는데요 뭐 제가 쓴걸 대충 연결지어서 한번 써보겠습니다.


 

(문제있으면 ㅍㅍㅅㅅ에서 댓글달아서 지우거나 비밀글로 해달라 하겠죠…)


 

먼저 한국의 현실로 운을 띄웠습니다. 90년대 말만해도 모르면 찾아다녀야하고 줄줄이 외워야하는게 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21세기는 다르죠 검색이란 엄청난게 있는데 외우는게 뭔 소용일까요 이게 가장 큰 변화중 하나일겁니다. 거기다가 알파고의 시대 즉 인공지능이 확 대두된 현실입니다.


 

하지만 21세기 현재의 한국은 어떨까요?


 

21세기의 한국형 천재는 과연 90년대말과 다를까요? 90년대만 해도 기억력이 좋고 혼자서 다 할줄 알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21세기는 혼자가 아닌 분업과 협동이 주가 됩니다만 21세기에도 여전히 암기, 계산, 선행학습, 규칙을 잘 따라야 천재소리를 듣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거죠 한국형 천재는 만들어진 문제만 풀줄 알뿐 새로운 규칙을 못만든단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 한국형 천재를 말이죠, 그리고 그들은 제2의 이휘소가 나오길 기다릴 따름입니다. 이휘소… 하지만 그는 우리나라가 낳아주기만 할뿐 한국이 키운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공부해서 미국에서 유명해졌을뿐 역으로 생각해보자 잘 크면 이휘소 수준의 인재가 될만한 사람이 우리나라로 왔다. 그럼 우리나라는 그런 사람을 잘 키워줄 수 있을까? 우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


 


 

서울대 자연과학대에 대한 평가


 

세계의 석학들이 서울대 자연과학대를 컨설팅한 결과다. 기사는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3/09/0200000000AKR20160309053551004.HTML을 들어가보면 알수있다.


 

요약해보면 서울대 교수들은 추종자적 성격이 강하며 인기있는 연구만 하려하고 교수숫자가 대학원생 숫자에 비해 적으며 모험적 연구를 전혀 하지 않는다. 또한 포스트닥터 연구자의 안정적인 자리를 잡아주는 지원이 열악하다고 한다.정말 별로 좋지 않은 결과이다.


 

이제 우리나라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은 중국의 대학은 이미 한국대학의 수준을 넘어었단 것이다. 네이처지수를 인용해서 말하면 한국은 50위권이지만 베이징대, 칭화대, 난카이대 같은 1류대학은 20위권이다 참고로 2008년엔 그나마 비슷했다. 또한 서울대 자연계열 학장단이 베이징대를 방문해서 한번 시찰한다고 한다. 서울대는 이렇게 중국내의 대학에게 확실히 밀리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또한 접근법의 차이도 있다.


 

한국은 체계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며 체계속의 문제풀이를 위주로 가르치며 연구한다. 하지만 외국은 우리가 모르는 그 무언가에 집중하며 그 무언가에 대한 문제를 만들고 정형화해서 과제를 설정하여 체계를 구축한다.


 


 

또한 사람수가 적다. 물론 GDP나 이런걸 따지면 아니라고 말할수 있다. 하지만 대학끼리만 따져보자 서울대는 자연과학계 교수가 43 나고야 대 55명 도호쿠대 175명이다. 한국 최고라는 서울대와 그래도 일본의 나름 유수대학과 비교했지만 그래도 안타까운게 현실이다.


 

사람수가 중요한 이유로 조선업계를 들수있다. 2000년대의 조선은 정말 한국이 압도적인 1위였다. 그런데 한국이 왜 압도적이었을까?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사람수를 따져보자. 당시에 한국 조선업계 설계자가 8000명이었다 한다. 그런데 일본이 2000명이었다. 사람수가 결국 그런 압도적인 능력을 보여줄수 있었다고 볼수있다. 실제로 반도체 업계도 값싼 석사급 고급인력을 데려간 덕을 봤다고 본다.


 

또한 우리나라는 남들 하는 만큼 하면 좋은 꼴을 보지 못하는데 유독 기초과학은 남들 하는 만큼 GDP비율 따져서 생각한다.


 

또한 기초과학은 자생력을 가질만한 임계점을 넘지 못하였다 본다. 그런데 여전히 지원은 미약하고 또 미약하다.


 

언론의 요구는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의식을 반증해준다. 인터뷰를 요청해선 힉스입자를 초등학생도 이해할수 있을정도로, 노벨상 수상내용을 한문장으로, 중력파를 유치원생도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달라 요구한다. 과학도 이미 20세기 초와 많이 달라졌다 쌓인 데이터도 많고 결과도 상당하다. 거기다가 직관적인 답을 내놓을수 있는 과학은 고전물리학이 끝이다. 현대 물리학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란… 어렵다. 그런데 언론 과학기사에다가 쿼크라는 단어조차 넣을수 없다. 독자들이 어려워한다고… 이게 현실이다.


 


 

뉴트리노 즉 중성미자에 대한 실험에 중국과 한국이 경쟁을 한적이 있다. 결과는 둘다 괜찮았고 한국의 논문은 미국의 최고권위 수준의 입자물리학저널에 실렸다. 그런데 중국과 한국의 인덱스를 보면 뭔가 안타까운걸 알수있다. 중국의 인덱스는 보기만 해도 꽉차보이고 대단해보인다. 저자만 270명 38개 기관에서 참여하였으며 예산은 600억을 투자하였다.


 

이에비해 한국은 34명, 12대학, 116억원이란 예산으로 이 결과를 만들어냈다. 분명히 중요한 실험이며 의미있는 결과를 냈다. 그런데 핵심연구원은 학계를 떠났다. 도저히 비전이 없다고 이런 인색한 지원이 연구원을 떠나게 만든 것이다.


 

그럼 노벨상을 받으려면 어떡해 해야할까? 생태계를 안정화시키고(대학 및 연구소를 제대로 돌아가도록 해야하며, 공교육을 재건시키고 기초과학분야를 보호) 인프라를 갖춰야 하며(연구기관 단지의 확충 및 충원, 전담 정식 기구의 설치) 안정적인 연구지원과 BIG SCIENCE(현재의 미국이나 유럽처럼 2000명 이상의 과학자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의 발족 및 추친)를 확실하게 해야 할것이다.


 

여기서 BIG SCIENCE는 국제적으로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는 것이 가능한 위치의 프로젝트를 뜻하는데 이게 21세기 과학이라 할수있다. 이런 과학을 한국이 해야한단 것이다.


 

또한 과학은 실패의 학문이다. 그리고 실용적이지 못한다. 하지만 아무도 모나리자에 실용을 묻고 경제적인 것을 따지지 않는다. 기초과학은 그저 국가의 품격과 수준을 높여줄 따름이다. 우린 프론티어를 봐야한다. 그 너머를 예상할수 있음 프론티어가 아니다. 과학도 이제는 한국형을 넘어서 프론티어를 봐야한다.


 


 

여기까지가 제가 정리하고 어느샌가 제가 알아서 보충해버린 본강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줄부턴 질문입니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엘리트주의인데 과연 이걸 어떻게 봐야하는게 또한 한국 영재교육은 어떤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우리나라 엘리트 중심주의는 서울대가 표본이다. 그 서울대가 지금까지 이룩한게 무엇인가. 될만한 사람에게 돈을 몰아주는 것은 이미 다 실페하였다. 개인보다는 풀을 지원해야하며 잠재된 천재들을 이끌어낼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영재교육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선행학습적인 사람을 천재라 부르는 것이 아닌 없는 문제를 만들어 낼줄 알아야 하는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는데 가르치는 사람은 어찌 바뀌어야 하는가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정보의 재구성이 중요한 지금 우리는 플랫포머를 키워야 한다. 또한 기초가 더 단단해야 하며 문제를 푸는 수단이 아닌 기초를 더욱더 단단히 잡아줘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은 무엇일까 모든걸 다지털로 재구축을 4차 산업혁명이라 보는데 우리가 우리식의 뭔가를 쌓고 싶다면 아날로그 즉 인문학에 능통해야 하며 한국인에게 적합한 디지털 세상을 만들수 있는 그런 인재가 필요하다.


 

(질문을 까먹었다.)


 

교수들이 책임을 아니려하는게 심하다. 사회적 이슈에 나사면 되는데 그걸 책임 안지려하니…. 또한 정부가 생각하는 기초와 학계가 생각하는 기초는 아예 다르다. 정부는 로열티를 받을수 있는 것을 기초라 보는데 여기서 근본적으로 갈린다. 또한 우리나라의 R&D는 예산규모로 보면 세계적 수준이지만 그걸 상세히 따져보면 결국 그 돈들은 기업으로 간다 .학계에는 크게 흘러나오질 않는다.


 

한국에서 과학계를 개인적으로 또는 운동적으로 바꿀수 있는가


 

한계가 있다. 일단 과학계의 제일 큰 문제중 하나는 정책적 고민을 안한단 것이다. 수장쯤 되면 정책적 고민도 필요하지만 전혀 그런 것을 갖추지 못할뿐더러 과학게가 합져지질 않는다.


 

언젠가부터 과학자가 워너비가 아니게 됐고 과학의 과만 꺼내도 사람들이 지레 겁부터 먹는다.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날까, 또한 과학계에 사람이 들어오려면 어떻해야 할것인가.


 

일단 과학자의 꿈이 꺾인 것은 IMF가 컸다, 또한 과학이 사회에 설득을 잘 하지 못했다. 또한 인력부족은 일선에서 뛸 과학자 수준이 많이 부족하단 것인데 또한 우리나라 과학계는 각자도생이다. 정말 할말이 없다. 예를 들자 일본에서 컨퍼런스가 열렸다., 그때는 일본의 이공계가 위기라며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일본은 그 컨퍼런스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수들이 이는 국가적인 문제이며 우리 모두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며 포스트닥터의 안정적 직장을 확실히 해주질 않는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한국차례가 됐을 때 말할게 없었다. 정말 각자도생이다.


 

높은 사람의 과학인식의 문제도 있는가.

모든 문제를 물건 파는 것에 집중하도록 한다. 거기다가 학회도 그거에 반대의견을 말하긴 커녕 취업률을 내세우고 있다. 이를 부당하다 말하는 것이 아닌, 한국 과학계는 참을 힘들다.


 


 


 

아…. 그냥 쭉 옮겼습니다. 보고 어떠셨는지 모르곘네요…… 의견은 언제나처럼 받습니다


 

그럼 모두들 수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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