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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제국들- 인간의 발전을 위한 중요한 정립 그냥 내 생각


 



 


 

근래에 읽은 비문학책 중 가장 빠른 시간에 읽은 책이 아닐까 싶다. 처음 봤을 때 제목에 확 끌렸다.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엥카레의 지도라니 대체 어떤 내용일까? 하고


 

보면서 정말 흥미로웠다. 저자에 대해 간단히 말하면 저자의 이름은 피터 겔리슨이며 하버드대에서 교편을 잡고있는 과학사학자이다. 원체 글을 잘 쓴다 하는데 공감이 간다.


 

개인적으로 글은 쉬워야 하며 잘 풀어내고, 안에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생각하는데 이 작가도 그런듯 하다. 비문학이다보니 안에 무언가를 함축시킬순 없지만 글이 충분히 쉽고 재밌다 생각한다.


 

먼저 시간과 공간 즉 시간과 지도에 대해 먼저 간단히 얘기해보자 한다.


 

인간의 발전에 가장 지대하게 영향을 끼친 것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는 시간과 공간을 시각화한 지도의 역할이 크다 생각한다.


 

인간에겐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기관이 없다. 즉 일, 시, 분, 초의 정립은 사람에게 어떠한 측정기관이 있어서 이런 이런 기준으로 나에게 느껴지기에 정해진 것이 아닌 순수 인간의 관념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 시간들을 바탕으로 사람들과 사람들의 커뮤니티(회사, 학교, 국가)는 체계적으로 짜여지기 시작한다.


 

어떤분들은 의문이 들 것이다. 시간은 언제나 우리가 아는 그대로 아닌가? 아니다 시간은 그대로 일수 있어도 시간의 기준은 천년전의 사람과 지금의 사람이 명확히 다르다. 여러분들이 아는 1년이란 시간의 기준은 정립된지 천년이 되질 않았다. 과거에는 이집트력, 율리우스력이 있었으며 현재의 역법인 그레고리우스력과 가장 가까운 율리우스력도 기원전 46년에 제정되었으며 현재 전세계적으로 사용중인 그레고리우스력의 경우 1582년에 제정되었다.


 

하지만 이건 서양의 얘기다. 서양조차도 자기들 나라에 맞는 역법을 사용하였는데 동양은 어떨까? 동양은 기본적으로 월력을 사용하였으며 우리나라는 1895년 을미개혁때 그레고리우스력을 도입했다. 정말 우리가 아는 1년의 개념은 굉장히 젊은 개념이다.


 

그리고 인간의 기술이 발전해가며 인간의 욕구는 자신의 발이 닿는 곳이 아닌 그 너머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대항해시대가 들어서고 메르카토르에 의해 대략적이고 보기 편한 지도가 만들어졌다. 그렇게 한눈에 세계를 봄으로서 인간은 지속적으로 발전했다.


 

간단히 시간과 공간에 대한 얘기를 했으니 본론으로 넘어가자


 

이 책은 총 네가지를 보여준다. 시간의 기준, 경도의 측정, 푸엥카레의 생애와 어째서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었으며, 아인슈타인은 왜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었으며 어떻게 상대성이론을 정립시킬수 있느냐다.


 

먼저 시간의 기준에 대해 말하겠다.


 

시대가 흐르고 흐르며 시간이란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기술적으로는 그나마 나았다. 중요 열차역마다 있는 마스터시계는 천문대에서 측정한 시간을 전신선으로 동기화시킨 뒤 철로를 따라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커다란 문제가 있었다. 그 시간은 과연 정확한가? 지방마다 시간대가 다 다른데?


 

1883년 미국에는 50개의 시간대가 있었다. 이는 천문대의 작품이기도 했다. 각 지방의 천문대는 자신의 지방에 맞는 시간을 시(市)에 팔았다. 그리고 그 시간은 그 시에 사는 시민들이 보고 맞추며 생활했다. 정말로 시간은 금이었다. 이는 미국의 철도관계자들에겐 재앙이었다. 정시성이 생명인 것이 철도인데 50개의 다른 시간기준으로 시간표를 짜야 하는 것은 진정한 재앙이었으며 결의를 통해 시간대를 통일하기로 한다.


 

그리고 시간대의 중요성이 올라가면서 시간과 공간의 기준이라 할수 있는 본초자오선을 정하기 위한 회의를 열기로 한다. 후보는 몇 없었다. 영국의 그리니치나 프랑스의 파리이나 였다.


 

프랑스는 과학과 측정기술의 우위성을 역설하며 파리가 본초자오선이 되야한다 주장했다. 이는 앞선 국제도량형 회의에서 미터법을 프랑스 승리로 만든 과거의 영광을 생각한 자신감의 발로이기도 했다. 하지만 선박을 이용한 세계물동량의 72퍼센트는 영국에서 운반했다. 이미 대부분의 지도는 그리니치를 기준으로 그려져있었고 시간대의 기준인 본초자오선은 그리니치를 기준으로 결정되었다. 그렇게 지도의 기준이 결정되었고 시간도 지도와 따로 놀지 않았다. 시간도 이제 지도와 통합되게 되었다.


 

경도의 측정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1900년도까지 경도는 정확히 정해지지 않았다. 이는 제국주의 시대에 있어선 굉장한 문제였다. 식민지의 정확한 영토의 측정과 정확한 지도의 작성을 위해선 정확한 경도의 측정은 불가피했다. 하지만 그시대에 널리 쓰인 유선전신으론 어떻게 해도 경도측정에 오차가 있었다. 그 시대의 정확도라 해도 런던과 파리의 오차가 0.2초의 차이란건 굉장한 문제였다.


 

이에 푸엥카레는 무선전신으로 시간의 동기화를 통한 정확한 측정을 계획한다. 이에 쓰일 무선신호송출기는 그 시대의 최고높이 건축물이자 철골건축물인 에펠탑을 이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의 생전에 이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다. 그의 사후에 이르러서야 이 계획은 실행되었다. 그는 유산으로 우리들에게 정확한 경도를 남겨준 것이다.


 

푸엥카레의 생애와 어째서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었는가이다.


 

이 글에선 푸엥카레의 사고방식에 대해서만 중점적으로 얘기하겠다. 그의 생애가 궁금하면 책을 사서 보기 바란다.


 

작가는 푸엥카레에 대한 전기가 단 한권도 없음을 안타까워한다. 이는 자연스래 이 책에서의 푸엥카레의 비중을 짐작케 한다. 작가는 푸엥카레의 과학자이면서 관료자적인 면모, 또한 에테르란 개념을 기어이 버리지 못한 이유를 단 한문장으로 설명한다.


 

에콜폴리테크니크 마크가 그의 영혼에 각인 되었기에


 

프랑스엔 그랑제꼴이란 특이한 교육기관이 있다. 푸엥카레는 이중 에콜폴리테크니크 출신으로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이 기관은 기술과 수리물리학이 비슷한 힘으로 소용돌이 치는 거대한 기계다 라고 한다.


 

그렇기에 그는 누구보다도 수학적이면서도 이를 현실과 접목시키기 바랬으며 이는 1903년의 푸엥카레가 에콜폴리테크니크에서 연설한 내용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행동과 사고의 결합 그는 그것을 강조하였다.


 

그런 그가 어쩌면 애테르의 존재를 고집스럽게 주장한 이유도 결국은 당연한 것이다. 그는 원자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고지식한 교수진 사이에서 가르침을 받은 것이다. 거기다가 이 명망있는 과학자는 에테르가 없단 사실을 받아들이기에 너무 늙었고(그래봤자 50대다)거기다 그의 이론은 에테르의 기반이었다.


 

하지만 그는 굉장히 통찰력 있는 시각을가지고 있었으며 과학관료적 자질은 탁월했다. 단순히 시대착오적 인물이라 하기에 아까운 인물이다.


 

아인슈타인은 왜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었으며 어떻게 상대성이론을 정립시킬수 있느냐다


 

아인슈타인은 그 유명한 취리히 연방공과대학을 나왔다. 이 대학은 푸엥카레가 나온 대학과는 또다른 기풍을 가지고 있었다. 에콜폴리테크니크는 수리물리학과 기술이 비슷한 수준으로 존재하며 수학은 기술의 여왕으로 칭송받았지만 취리히에선 수학은 별 관심이 없었다. 광산 엔지니어들이 세운 곳 답게 그들에겐 기술과 체계적인 실험이 공종했으며 사회에서 즉시 써먹어야 했기에 응용적인 기술과 추상적인 수학은 함께 공존했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이 취직한 베른 특허국은 그 당시 시간의 좌표화에 대한 특허가 가장 활발했던 곳이었고, 그 곳의 특허청 직원으로 있었던 아인슈타인은 그 시대의 패러다임인 뉴턴의 절대시간이 실제와 맞지 않음을 빨리 깨달을수 있었다. 아인슈타인이란 위대한 과학자의 위대한 논문은 과학자의 삶의 배경만이 아닌 시대상의 발전에 따라 같이 만들어진 시대의 요구인 것이다.


 

마무리 하겠다. 이 책의 내용은 내가 쓴 내용이 전부가 아니다. 더 좋은 내용들이 많고 여러분들이 읽으면 글쓴이보다 훨씬 풍성한 내용들을 접할수 있으며 이 난잡한 글보다도 읽기 쉽고, 내용의 충실함은 이루 말할수 없다. 참으로 좋은 책이다.


 

평소 시간의 기준, 공간의 기준, 혹은 시계 즉 시간이 어떻게 돌아가는가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한번 보길 바란다. 충분히 궁금한 것 이상의 무언가를 얻으리라 확신한다.


11.29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공연 공연


 


 


 


 



 


 

공연명-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지휘자- 주빈 메타


 

오케스트라-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공연장- 서울 예술의 전당


 


 

먼저 이 글을 읽을 때 주지할 점은 글쓴이가 소위 덕통사고를 순간적으로 당해서 오늘 공연과 사랑에 빠진 상태에서 쓴 글이란 걸 알아줬음 한다. 무논리적 해석이 다분하다. 이해해주기 바라며 시작한다.


 

오늘 공연은 개인적으로 절대 못볼줄 알았던 공연이다. 일단 이번년도는 공연 쉬기로 결심했고 비싸기도 엄청 비싸서 직딩이지만(최근에 갓수됐다) 허락 못받으니 포기한 공연이었는데 싹딜이란 좋은 기회를 통해 공연을 보게 되었고 결과는 환상적이었다. 집에 오는 길 내내 정신의 2/3은 놓고 다녔으며 집에 와서 뭐에 홀린 듯 감상문을 쓰고 있다.


 

전체적으로 환상적 공연이라 생각한다. 객원이지만 하모니도 훌륭했으며 특히 타악기의 소리가 한번씩 들릴때마다 내 가슴이 실제로 죄여 들어와서 좀 부여잡았다. 이런 경험은 정말 처음이었다.


 

2부 끝나자마자 한 기립은 나에겐 너무나도 당연했다. 실황으로 처음보는 세계 최정상급 오케스트라에 주빈메타란 마에스트로가 보여주는 해석이란…. 나에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이제 각 곡에서 느낀 점을 써볼까 한다.


 


 

K551 Symphony No.41 Jupiter


 

근래에 중점적으로 듣고 있었던 곡이며 들을때마다 실황으로 보고 싶단 생각을 많이 했다. 맨 처음 이 공연을 예매했을 때 주피터에 눈이 뒤집혀서 예매하겠다고 달려들었다.


 

오늘 공연을 보기 전 실황에서 조차도 나는 악장과 악장간의 템포조절, 그리고 연결성을 굉장히 중시했다. 그래서 흔히 실황에서 나오는 1악장 적당한 템포 2악장 느린 템포 3악장 빠른 템포 4악장 중간 템포 이런식으로 템포가 왔다리 갔다리 하는걸 굉장히 싫어한다.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다. 지휘자와 오케가 능력만 된다면 관계없다. 이런 연주력이면 해석이고 취향이고 하나도 관계없이 그냥 귀가 즐거우니 만족, 이렇게 말할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현장감이란 것도 있으니 지휘자의 조절 나름이다 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수 있게 됐다.


 

실제로 듣는 내내 웃음이 입가에서 가시지 않았고 행복이 마음속에 들어와 있음을 처음으로 느껴봤으며, 곡이 연주되는 내내 이 곡이 끝나지 않았음 좋겠다고 계속 바라며 곡이 끝나곤 충동적으로 이민가고 싶어졌었다.


 

환하고 빛나는 모짜르트였다. 행복한 밤의 시작에 걸맞았다.


 

Rite of spring


 


 

이번 공연중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이다. 일단 이 곡이 굉장히 마음에 든 사람의 의견으로 봐줬으면 한다.


 

저번주 화요일에 처음으로 봄의 제전을 듣고 갤러리에 불평만 올렸다. 괴기하고, 정돈 안되있고, 음이 튄다. 도저히 이 음이 여기서 왜 나와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푸념만 잔뜩 늘어놨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너가 못 외웠다, 발레공연 보고 다시 들어봐야 이해된다 란 의견이 돌아왔다. 그래서 게르기에프, 마린스키의 버전으로 봤는데 뭔가 느낌이 왔다. 그리고 외울 때 까지 들었다.


 

봄의 제전은 현대적인 배경의 곡이 아니다. 원시의 샤머니즘이 살아 숨쉬고 주술사가 화육신으로서 있는시대의 노래이다. 그리고 여자들의 춤이다.


 

고대사회에서 여자는 번성, 풍요를 의미했고 여자들이 모여 땅을 밟고 조상신에게 제사지내며 끝내 풍요를 불러오는 것, 그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식이었으며 스트라빈스키는 이 의식을 환상적인 노래로 다시금 불러냈다. 하지만 오늘 공연은 처음부터 달랐다. 봄이 오는 서주는 같지만 그 뒤 여자들의 춤부터 다른 것이 연상되었따, 가면 갈수록 여자들이 아닌 근육질의 남성이 연상되는 것이다.


 

이번 봄의 제전 공연의 예습을 위해 레틀, 베를린필의 봄의 제전을 레퍼런스로 들었다. 나에겐 한가지 믿음이 있다. 래틀의 현대음악에 대한 이해, 특히 스트라빈스키 초기작의 이해는 현존 지휘자중 최고수준 일 것이란 믿음이다. 그리고 래틀은 나의 기대에 부흥한다 여긴다.


 

래틀의 해석에선 여자들이 느껴진다. 여자들이 땅을 밟고 밭을 가는 시늉, 혹은 춤 사위를 하는 여성스러운 결이 음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하지만 메타의 그림은 완전히 달랐다. 지극히 남성적이며 여성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1부에서 두 부족이 싸운다. 그곳에서 여성이 느껴졌는가? 대지의 춤에선? 2부에서도 그렇다. 표제에도 분명히 여성들이라 적혀있다. 하지만 메타의 곡에선 여성이 나타나지 않는다. 근육질의 남성들이 봄의 제전 즉 의식을 치르고 있을 따름이다.


 

고대사회일수록, 농경문화일수록 모계사회적 영향이 강하다. 그러기에 스트라빈스키도 표제에 분명히 여성이라 명시했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남성을 느꼈을까? 한가지 이유를 적어본다. 템포가 느리다. 지극히 느리다.


 

래틀의 봄의 제전은 34분 20초 게르기예프와 마린스키 발레단의 공연은 약 34분 30초 시간은 못봤지만 대부분 갤러들의 공통적 의견은 40분이다. 지극히 느린 템포가 맞다.


 

난 봄의 제전을 들으며 핵심적인 부분이라 여긴 것이 있다. 곡안의 기괴함, 원초적인 생동감, 모인 군중들이 벌이는 주술적인 모습이 곡안에서 상상이 가능해야 한다 생각한다.


 

이 해석이 마음에 안드시는 분께 질문 드리고 싶다. 템포는 정말 느리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괴함, 원시적인 힘, 역동성이 싸그리 죽었는가? 그럼 음이 얌전했는가? 나에게는 아니었다. 원초적인 힘은 살아있었고 현, 목관부가 세련된 음을 냈지만 타악기의 음이 너무나도 원초적인 힘을 보여줬다 봤다.


 

물론 템포는 너무나도 중요하다. 곡에는 곡만의 어울리는 템포가 있으니, 그래야 곡 안의 역동성도 살아난다 생각한다. 역설적이게도 메타의 해석에서 나는 역동성을 느꼈다.


 

메타의 해석은 지극히 남성적이다. 곡의 표제도 전부 바꿔야 한다. 아니다 배경마자 바뀌어야 한다 본다. 고대의 부계사회에서 봄이 다가오고 근육질의 남성들이 봄의 의식을 치르는걸 연상하는게 지극히 정상적이다.


 

그리고 난 메타의 해석에 완전히 넘어갔다. 땅을 고르기 위한 남자들의 발, 그리고 전체적인 템포와 분위기를 곱씹으며 나아가려는 메타의 그림이 나에겐 너무 와닿은 것이다. 남자들의 역동성이 너무나도 잘 그려졌다.


 

누군가는 그럴수 있다. 너가 클알못이며 단순히 오늘 타악기가 신들리듯 쳐대서 너가 거기에 홀랑 넘어간거다. 오늘 해석 뭣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뽕이 있었기에 메타의 해석에 설득력이 생겼고 난 거기에 넘어갔다.


 

솔직히 그 뽕 못넣는 지휘자 널렸고, 타악기 주자 널렸다. 마지막 부분의 환상적인 타악기 소리, 거기에 안넘어가는 클래식 애호가가 어딨을까 그 부분은 다시 생각해도 환상적이었다. 난 뽕이라도 거하게 맞아서 행복했따.


 

또한 객원이지만 메타와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환상적인 하모니가 너무 좋았다. 이게 호흡이안 맞는거면 난 정말 독일 여행을 가서 얀손스와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공연을 들어야 한다. 거기서 기절하는 한이 있더라도


 


 

엥콜- Swan lake walts 부분


 

난 분명히 2분전까지만 해도 야성이 넘치는 원시적인 공간에 있었다. 하지만 이 곡이 나오는 순간 난 바로 동화속 세상에 빠져들었다. 할말이 없다. 난 동화속 세상을 거닐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기립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마무리하겠다. 오늘 공연에 호불호는 명확하다. 하지만 나 자신은 이 밤을 즐겼을 뿐이고, 영원히 끝나지 않길 빌며 여운을 남긴 체로 감상문을 적기만 할 따름이다. 참으로 행복하고 아름다운 밤이었다.


 

하지만 이 밤에서 깨어나야 한다. 그래야 계속 수준 높은 공연을 갈구하며 애호가를 할 것 아닌가…


 

하지만 분명한건 하나다. 나같이 처음으로 독일 1급 오케를 본 사람에겐 행운의 밤이었다는 것


 

모두의 행운을 빌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이 글을 읽는 모두 평안하길


마검패검- 정제되지 않은 하지만 생생한 용대운 소설


 



 


 

원래는 태극문을 먼저 쓸까했지만 그러려면 이 작품을 먼저 써야겠단 생각을 하게 되어 용대운이란 작가의 전작 마검패검을 먼저 리뷰하는게 순서인 듯 하여 이 작품부터 쓰게 되었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생략하고자 한다. 쓰려고 봤더니 1권의 절반정도는 써야 할듯하다.


 

간단히 말하자면 사랑의 도피를 하다 여자의 정혼자에게 잡혔고 정혼자의 친구가 주인공의 두 눈을 나무못으로 박아버린다. 그리고 사랑의 도피 중 도움을 준 사공이 그의 두 눈을 고쳐주는 대신 사공의 복수를 해주기로 한다.


 

이 작품은 용대운 작가의 첫작이지만 용대운 작가 본인이름이 아닌 야설록 작가와의 공저로 나온 작품이다. 그래서 그런가 구무협적 감성에 좀더 가깝다 표현할 수 있다고 본다.


 

보통 구무협의 경우 스토리를 진행하며 무공을 하나하나 얻어가고, 새로운 무공이 더 강한 요소가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렇진 않다. 꼭 새로 얻은 무공이 더 강하고 약하고 이런건 아니다. 상황에 따라 얻은 검법들을 적절히 사용한다. 이 작품을 움직이는 거대한 축은 복수다. 전옥심은 백검회란 단체를 멸문시킨 십자맹이란 단체의 복수, 또한 주자앙의 자존심에 상처를 준 나귀탄 노인에게의 복수, 두개의 복수들은 스토리 진행의 큰 축이 된다.


 

또한 고룡의 책을 필사도 했을 정도로 용대운 작가에겐 고룡이란 닮고 싶은 작가인 듯 하다(고룡 뿐 아니라 레이먼드 첸들러 대실 헤미트등의 하드보일드 작가의 책도 필사했다 한다.)고룡 소설의 아이덴티티라고도 할 수 있는 추리적 요소도 들어가니 말이다. 물론 고룡이나 용대운 작가의 추리가 추리소설처럼 딱딱 들어맞거나 정교하다 보긴 어렵다. 하지만 나름 추리소설적 요소도 충분히 잘 섞었다 본다.


 

또한 시대를 생각하면 신선한 작품이다. 1988년은 한창 구무협이 날뛰던 시기다. 그 시대 소설들을 생각하면 단순하다 잘생기고 천재인 주인공이 강한 무공을 익히고 강호에 출도해 여자와 사귀고 더 강한 무공을 얻고, 적 무찌르고 이런 단순한 패턴을 반복해가며 이제 많은 여자들을 얻고 적을 무찌른다. 작품전체를 관통하는 감정선 및 주제는 찾기 굉장히 힘들다. 이런 시기에 마검패검은 상당히 새로운 시도라 생각이 든다.


 

복수라는 작품을 꿰뚫는 감정선과 궁극의 무를 향해 나아가는 무인들이란 주제는 심플하면서도 무협이란 장르에 걸맞는 주제라 생각한다.


 

물론 이 작품에도 시대상에 맞는 장면이 두개는 있다 그런데 그 시대 무협 생각하면 고작 두개는…. 아마 독자들이 만족하진 못했을 듯 싶다.


 

또한 단점이라고 할수도 아닐수도 있는데 초기작이다 보니 글 자체가 살짝 난잡하고 흡인력이 떨어진다. 필자는 보통 용대운 작품 언급할 때 마검패검은 언급을 잘안한다. 나름 괜찮기도 하고, 재미도 있고 생생한 용대운 본인의 필력이 있지만 그렇게 흡인력 있지 못하며 난잡한 감이 없잖아 있다. 특히 초반부 추리부분이 그러하다. 오랜만에 읽어서 그런가 그 지점에서 읽는 속도가 팍 줄었다. 너무 난잡해서…


 

그래도 생생한 용대운을 느끼기엔 좋다 생각한다. 등장인물로 넘어가자


 

전옥심- 복수가 주인 감정선 답게 주인공이 움직이는 모든 동기가 복수다. 무림에 첫발을 딛게 된 계기가 사랑의 도피 중 붙잡혀서 두눈이 박살난 것에 대한 복수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 복수는 작중의 전개를 위한 복수는 아니다. 백검회를 멸문시키기 위한 복수가 주된 목적이다. 그걸 위해 전옥심은 8가지 검법을 익혔다. 또한 어떠한 초식이든 파해법을 내 놓을 수 있단 주자앙의 자존심에 상처를 준 노인이 보여준 일천영과 이를 파훼하기 위한 단심혈한을 익혀 강호에 나섰다. 그리고 설욕해나가며 작품의 주제에 맞게 그는 작중에 제시되는 무의 최고 경지에 오른다.


 

전옥심은 초반의 8개의 검법을 얻고 절대적인 검법 셋, 이를 파훼하는 검법 셋 총 14개의 검법을 토대로 무의 궁극의 경지에 오른 것이다.


 

또한 그는 아픈 첫사랑의 추억을 만회할 새로운 연인도 만났다. 무림이란 비정한 세계에서 모든 것을 이룬 승리자가 되었다.


 

주자앙- 그의 천재적인 두뇌는 그 어떤 초식도 한번 보면 파훼 할 수 있다. 하지만 나귀탄 노인이 보여준 절대적인 한 초식의 검법은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었다.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절대의 검법을 연구한다. 그리고 십자맹의 습격으로 두 팔과 한눈 , 한쪽 다리를 잃었다, 하지만 그는 그 상황에서도 검법의 파훼를 위한 연구를 계속했다. 그리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감각도와 단심혈한을 창안했지만 익힐 수 없었고 그는우연한 기회에 전옥심이란 소년을 만났다. 그 소년의 두 눈을 대가로 무림의 세계에 그를 초대하였다.


 

그리고 소년은 주자앙의 기대에 부응하듯 가르치고 창안한 모든 것을 익혔지만 복수가 이뤄지기 직전 허망하게 죽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가르친 소년은 죽기 직전 그의 아들이 되었다.


 

주자앙은 작중내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안타까운 모습으로 나왔다. 신체의 부자유속에 복수의 화신이 되어 십자맹에게 복수하고, 노인에게 한방 먹이기 위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마지막엔 소년의 아버지가 되어 죽었다. 그는 죽었지만 소년은 그의 유산이자 그 자체가 되었다. 그의 마지막이 그렇게까지 허무하지만 하지 않을 이유일 것이다.


 


 

등장인물을 더 쓸까 했지만 그럼 스포가 심하므로 마무리하겠다.


 

마검패검은 지금도 용대운 대표작 하면 꼽히는 작품이다. 그만큼 용대운의 요소가 생생히 살아있고 여러 충격적 전개들은 그만한 재미를 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도 충분히 재밌고 읽을만한 작품이다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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