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로봇 도라에몽의 주관적인 블로그

asembley.egloos.com


포토로그


황금가지(1) – 주술학에서 최고의 입문서 그냥 내 생각


 


 



 

이 책을 읽는 것은 개인적으로 도전에 가까웠다. 고 1때 신화에 한창 빠져있었을 무렵 황금가지가 신화학의 최고봉이란 얘기를 듣고 구매했다. 하지만 고1에겐 너무 벅찬 책이었는지, 혹은 내 기대와 맞지않은, 주술에 관한 얘기만 주구장창 해서 그런지 다른 책들로 우선순위가 변경됐고, 대학간 뒤, 군대 다녀오고, 어영부영 시간 보내다가 어느샌가 1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시간이 좀 나서 스케쥴을 잡아서 읽게 되었다.


 

황금 가지는 조지 프레이져의 작품으로 전세계의 주술적인 행위 및 현상을 분류하여 정리한 책이다.


 

먼저 본인이 이 책을 쓰게 된 계기인 터너의 황금가지란 그림에 그려져 있는 전승에 대해 소개하며 시작한다.


 

터너의 황금가지


 


 

그리고 주술을 4가지 원리로 나눠 설명하여 주술이 종교가 되어가는 과정을 설명하고, 농경에서 가장 중요한 날씨를 주술적으로 어떻게 불러내려 노력했는지에 대해 얘기하며, 날씨를 관장하는 주술사가 자연스래 왕이되며 화육한 인신으로 까지 변모하여 화육신에 대해 자연스래 설명한다.


 

그리고 나무의 번식력과 생육성이 옛날사람들 뿐 아닌 1800년대까지 어떤식으로 영향을 줬는지 얘기한다.


 

그리고 식물들이 신화 혹은 각 나라의 여러 생활양식에 어떻게 영향을 줬는지 얘기하며 원시인들의 무궁무진한 터부들에 대해 설명한다.


 

우리들이 원시인들을 미개하다 생각하는 이유가 뭘까, 앞에서 말했던 주술적 행위는 그저 행위일 뿐이다. 하지만 터부 즉 금기가 거기에 얽혀지는 순간 제의 또는 일상생활 및 사고방식에 까지 얽메이게 되면서 엄청난 시너지현상이 나온다. 이렇게 하려니 이렇게 해야하고 그런데 이걸하면 안되고 저걸하면 안되고…. 정말 끝이 없다.


 

앞에서 공감, 감염, 동종 혹은 모방 주술의 설명이나 예시를 보면서 딱히 이상하게 느끼진 않았지만 터부부분에 오면서 결국 현대인과 고대인들은 넘을수 없는 무언가가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프레이저는 절묘하게 터부들을 예시로 놓은 챕터 뒤에 우리가 원시인들에게 빚진 것들이란 챕터를 통해서 우리의 생활방식 및 소중하게 여기는 생활양식의 많은 부분들이 고대에서 내려온 것이 많으며 우린 그저 거기에 조금 보탤 뿐이다 라는 말을 보면서 프레이져가 그 시대 사람이면서도 엘리트 의식에 아주 도취되지 않고 균형잡힌 사고방식으로 말한다 생각했다.


 

그시대 식자층은 전부 자기과시적 인물들인줄 알았는데 신선했다.


 

물론 이 책에 단점도 있다


 

결국 프레이저 본인도 대영제국인이란 자부심에 살은 그 시대 사람인지라 시대의 한계성은 어쩔수없다, 그럼에도 충분히 균형잡힌 감각들을 보여주고 있으니 대단하다 말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구입할때는 주석이 있는 책으로 사야한다 생각한다. 이 책의 역자분들이 어렵거나 보충설명이 필요한 부분에 친절하게 기나긴, 혹은 균형잡힌 주석을 넣어 주석이 또다른 책처럼 느껴지게 만들어준다. 실제로 이 책을 두번쨰 시도할 때 주석을 넘기면서 읽다가 주석을 같이 읽고 다시 처음부터 읽었다. 주석이 그만큼 중요하다 생각한다.


 

재밌는 것은 어쩔땐 본문보다 주석에 흥미가 더더욱 느껴질 때도 있단 것이다.


 

이책에 흥미를 돋아주기 위해 이 책에 적혀진 한가지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에서는 정조의 죽음에 쇠붙이 터부를 엮어서 얘기한다.


 

새삼스럽지만 조선시대 왕에 대해 얘기하자면 조선시대의 왕은 천명을 받은 초월적 존재이기에 법도를 뛰어넘은 무언가로 얘기되었으며, 왕권이 너무나도 넓고 강대해서 법으로 규정할수 없었다. 오죽하면 시경에 나라안의 모든 땅과 백성들이 모두 왕의 땅과 신하라는 말이 있을까, 또한 행차도에서도 감히 얼굴을 그릴수 없었다. 그리고 왕이 가는 곳엔 언제나 일월오봉도가 따라다니며 왕의 권위를 상징하였다.


 

즉 조선시대의 왕은 감히 신성왕적 존재라 말할수 있다,


 

한국천주교회사에 기술된 내용에 따르면 정조는 등창이 있었음에도 조선 예법에 따라 병이 든 경우에도 왕에게 손 대는 것을 금지하기에 등창의 절개수술을 재때 못해 승하했다고 적혀있는데 프레이저는 이 문구를 보며 정조의 사인에 신성왕의 몸에 쇠붙이를 댈수 없는 쇠붙이 터부를 엮어서 설명한 것이다.


 

이런 예시말고도 흥미로운 예시들이 많다.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황금가지는 주술이 신화로, 신화가 종교로 넘어가면서 종교의 여러부분들과 축제들이 어떻게 주술적인 부분들인지 보여주며 주술이 우리 생활에 어떻게 결부되었는가 보여주는 주술학에 대한 최고의 책이다. 신화에 관심이 크다면 결국은 읽고 넘어가야 할 책이라 본다.


 

신화와 주술적 부분은 굉장한 싱관관계가 있으며, 이 책이 쓰여진 목적 조차 신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전승이니 말이다.


 

읽다보면 정보가 많아서 버거울 수 있다. 하지만 책의 매력이 어떻게든 꾸역꾸역 읽게 한다. 여러분들도 읽독해보길 권한다.


태극문- 과거작을 뛰어넘기 위해 신무협의 시발점을 놓다.(+태극문 외전) 소설


 


 



 

이 글은 송년기념해서 쓰려 했는데 결국 신년 기념글이 되버렸다. 생각보다 글이 쓸게 없었다. 2번 다시 읽었지만 그래도 뭔가 모르겠다. 글은 유려하게 읽히고 괜찮고, 추리부분도 나아졌는데다가 신무협의 시초란 얘기까지 듣는 작품이지만 모르겠다… 좋은 글은 맞는데 어디에 중점을 두고 써야할지, 그냥 펜 가는대로 써보고자 한다. 원래부터 난잡한 글이지만 더더욱 난잡한 글일거 같다. 양해를 먼저 구하며 시작하겠다.


 

줄거리다


 

1. 당대 최 고수인 우내십대고수들이 누군가와의 비무에 패배하고 몇몇은 목숨을 잃었다. 이들 몇몇의 아들, 딸, 제자는 어떤 전설을 믿고 어느 곳으로 향한다. 그곳은 태극문


 

2. 우내십대고수중 최고수인 조립산에겐 조자건이란 동생이 있다. 동생은 천하제일인이, 형은 동생을 천하제일인으로 만드는 것이 꿈이다. 그리고 형은 동생을 천하제일인이 될 기반을 만들어 준 뒤 예정된 화군악과의 비무에서 패배하고 목숨을 잃는다.


 

3. 조자건은 태극문으로 향한다. 그곳엔 이미 세명의 걸출한 제자가 있었다. 천하제일미, 천하제일지, 천하제일의 승부사, 천하제일의 내력을 가진 자. 그런 그들에 비해 아무것도 없지만 천하제일의 심지를 가진 조자건이 들어왔다. 과연 조자건은 전설의 무공인 태극문의 무공을 완성하여 화군악을 이기고 천하제일인이 될수 있을 것인가


 


 

태극문이 왜 신무협의 시초란 얘기를 들을까? 배경적인 얘기부터 하자.


 

1. 1980년대 이후 구무협 공장장들이 시장을 지배하며 한국 작가의 글은 특정 출판사에서는 내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 독자들도 천편일률 그 자체인 구무협에 질려있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태극문은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다. 이재일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탐욕으로 비틀린 시대가 끝나고 골방의 시대가 시작하는 흐름이


 

2. 원고지의 시대에서 PC의 시대가 됐다. 케텔측에서 무협작가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주기로 하였고, 이에 무림동이 만들어 졌으며 용대운 작가가 그곳에서 연재를 하게 되었다. 활자의 환경으로 PC의 환경으로 세대가 교체되었고 태극문은 대표작중 하나였다.


 

간단하게 배경적으로 얘기해봤다. 그럼 플룻적인 면으로 들어가보자


 

구무협은 정말 이 큰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굉장히 비범한 기재가 굉장한 무공들을 여러 개를 익혀가며 독자들의 대리만족(사이다패스적 쾌감과 성적인 부분의 쾌감)을 충분히 충족시킨다.


 

좀더 세부적으로 보자


 

굉장히 비범한 기재가 무공을 익히고->여자를 만나고->더 강한 무공을 익히고->앞단계를 약 5~10번 반복->위기를 겪고->극복한 뒤 최후의 적을 무찌른다.


 

위의 틀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다. 재밌는건 소위 공장장(사마달, 검궁인, 와룡강, 제갈천 등등)들의 작품은 대표작이라 부를만한 1 작품만 읽어도 될 정도다. 하지만 태극문 이후 다른 작품들은 어떤가? 좌백, 이재일, 풍종호, 진산, 한수오 등등의 작품들은 과연 틀이 있는가? 이 이상 열거는 의미가 없을 듯 하니 넘어가자


 

태극문은 과거의 작품중 한 작품과 비교를 해보고 싶다. 마검패검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강하게 든 생각은 이 작품이 마검패검의 리메이크이자 작가가 마검패검을 뛰어넘으려는 강력한 의지로 글을 썼으리란 생각하기 때문이다.


 

먼저 무공에 대해 말해보자


 

마검패검, 태극문의 경우 최종적으로 올라서야 하는 경지가 제시되어있다. 바로 무형검이다. 이 무형검에 도달하는 방법은 서로 판이하다. 마검패검의 경우 최고의 검법 8개, 절대검법 3개, 절대검법 파해식 3개 총 14개의 검법을 통하여 무형검의 경지에 올랐다. 하지만 태극문의 방식은 다르다. 가장 기본적이지만 그러기에 완벽함이란 단어를 붙이기에 가능한 무공들을 엄선하여 완벽의 경지에 이르르는 것이다.


 

정말 냉북두의 말이 맞다. 태극문의 무공으론 절정고수가 될 수 없다. 자신의 재질이 안되면 아무리 몇 년을 익혔다 해도 그저 복마검법이나 육합권을 오래 익힌 것 뿐이다. 그러기에 작중에서도 태극문은 몰락해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조자건은 경지에 이르렀다.


 

그런데 짐짓 생각해보면 웃긴다. 태극문의 무공은 정말 기초다. 그리고 그것에 변화만 주어서 결국은 완벽의 경지에 오른다. 마치 듣기엔 1+1+1+1+1+1+1+…+1=∞에 이른단 얘기 아닌가, 혹은 완벽한 조깅의 폼으로 꾸준히 달리다 보면 약 10년이면 모든 종목의 달리기를 재패가 가능하단 말로도 들린다. 그 전에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 태극문의 이름을 생각해보자, 태극은 도교의 대표적 문양이다. 즉 태극문의 무공수련을 도교의 도를 닦는 수련으로 생각해보자, 그리고 태극문을 어느 도관에도 들어가지 않고 혼자서 도를 익히는 사람으로 가정하고, 일반 무인들을 도관에 들어가서 수련하는 사람들로 가정하자


 

도교는 신선이 되는 것을 추구한다. 공과격도 따르고 수양을하거나 연단술을 통해서 연단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결국엔 연이 닿거나 공과격에서 말하는 과를 전부 털어내면 살아서 신선이 될수 있다. 하지만 열심히 해도 안될수 있다. 1이라도 티끌이 있음 당연히 신선이 안된다. 그럼 뭐가 되는가. 도관에 소속되있는 사람들이라면 그 도관의 수장이 되거나 아님 도교의 한 파를 이끄는 위치까지 오를수 있다. 하지만 혼자서 익혔는데 신선이 안된다면? 그저 도교에 심취하고 경전 달달 외우는 노인네일 뿐이다.


 

태극문의 무공수련을 한번 도교의 수련과 비교해봤다.


 

또한 마검패검때보다 추리파트의 질과 설득력이 올라갔다. 마검패검때의 추리는 뭔가 난잡하고 정리가 안되있단 생각이 가득했다. 범인이 밝혀졌을떄도 어째서 이 인물이 범인일까, 작중 장치를 한번 확인해볼까란 생각보다는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으니, 하지만 태극문을 깔끔해진 글 솜씨와 함께 추리부분을 흥미롭게 지켜볼만 했다. 추리파트가 번잡하지 않고 볼만했다.


 

좀더 마검패검과 태극문을 비교하며 적어보려 했지만 등장인물에 대해 적으면서 비교하는게 편한 듯 하여 등장인물을 적으면서 써보도록 하겠다.


 

조자건- 굉장히 우직하고 자기가 말한 것은 반드시 지키려는 고집스럽고 남자다운 인물이다. 상당히 마초적인 인물이다. 전옥심과도 살짝 통하는 감이 있다. 그도 마초적인 인물임과 동시에 자신이 인식하듯, 아니듯 여자를 홀리는 성격이었으니, 둘의 호신공도 상당히 비슷하다. 전옥심의 감각도는 조자건의 심등대법과 불괴연혼강기를 합한것과 같다. 하지만 가장 주요한 무의 시작점 및 복수의 주체가 다르다.


 

전옥심은 복수가 그의 무의 시작이었다, 그의 복수가 곧 스승의 복수가 되었고, 자연스래 그가 마지막으로 대적하는 인물은 복수의 결말부다.


 

조자건의 무의 시작점은 그저 천하제일인이 되고싶은 그의 바람이다. 그는 천하제일인이란 목표를 어릴적부터 가졌고 그는 그것을 위해 우직하게 노력했다. 그에게 마지막 상대인 화군악은 난관일 따름이다. 누군가는 조립산의 복수를 위한 부분도 있다 말하겠지만 좀 애매하다 생각한다. 마지막 부분에서 조립산 이름이 한번만 언급될 뿐 복수심이란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복수의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이다 .친구의 복수다. 집단 혹은 타인의 복수를 위해서가 아닌 오롯히 친구를 위한 복수를 할 뿐이다. 그는 친구의 안위를 더욱 위하는 사람이며, 그는 그의 위협을 말해 주어도 감사를 표하지 않지만 친구의 행방이나 위협을 알려주면 감사를 표하는 사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옥심과 조자건은 남자다움이란 면에선 공통점이 있지만(물론 용대운 작가의 주인공이 대부분 마초적이긴 하다) 여러 디테일에 있어서 다른 면모를 보인다. 두 매력적인 케릭터의 차이를 비교하는 것도 재미라 생각한다.


 

화군악- 그는 혜성같이 등장해서 차례차례 그 시대의 고수들을 쓰러뜨려 천하제일인이 되었다. 그리고 화씨세가의 무결검법이 최고임을 다시 증명하였다. 하지만 세상에는 천적이 존재하는법, 거기다가 천적의 집념은 그의 집념 이상이었다, 화군악은 천적의 모든 것이 담긴 초식의 이름을 지어주고 퇴장한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집요하게 마검패검과 태극문을 비교하며 글을 쓰고있다. 이것에 대한 근거는 화군악에 이르러 나에게 확신을 주었다. 읽으면서 화군악이란 케릭터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오직 홀로 다니며, 무형검이란 경지까지 도달한 그의 무공, 무에 대한 집념이 지나쳐서 그의 적수가 될만한 인물을 누군가를 파멸시키거나 그에 비례한 고통까지 줘서 그의 적수가 될 인물을 요구하였다. 이것에서 전옥심과 마검패검의 흑막이 합쳐진 케릭터성이 화군악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화군악은 작중에서 제시된 최고의 경지인 무형검에 도달한다. 하지만 조자건은 그를 이긴다. 그럼 여기서 제시할 의문점이 있다. 그렇다면 조자건은 무형검 그 이상의 경지에 오른것인가?


 

난 아니라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명한 명제가 있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


 

화군악의 무공은 각 무공의 약점을 찌르는데 특화되어있다. 즉 화군악은 무형검이란 경지로 오르기 위해 조그마한 부분들을 쌓아올리며 무형검으로 올라갔다면 조자건은 처음부터 무형검이란 전체적 틀을 본능적 감을 통해 확인했으며(조자건의 무기는 검이 아닌 탁상의 나무토막이다. 그는 강호출도때부터 검의 형태가 아닌 것으로 검법을 펼쳤다.) 그리고 그 형태를 다듬어가며 무형검의 경지에 올랐다.


 

쌓아올린 것과 처음부터 한 덩이인 것은 완전함에 있어 차이가 크다.


 

화군악이 조자건에게 진 이유는 그저 완전한 무형검이 아니어서다.


 

또한 나에게 있어 조자건이 화군악을 쓰러뜨리는 작면은 단순한 장면이 아니게 됐다. 즉 태극문이란 소설의 주인공과 구작의 주인공과 숙적의 케릭터성이 합쳐진 케릭터를 이김으로서 전작을 뛰어넘으려는 작가의 무언가가 느껴졌다.


 

진표 – 참으로 말하기 어려운 케릭터다. 무협적인 유정이라 말해야 하나… 굉장히 극단적인 우정에 결말도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고야 말았다. 전작에선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우정은 없었다. 하지만 태극문이후로도 이렇게 극단적인 우정은 없다. 그나마 가장 극단적인 우정이라 부를 만한 것은 독보건곤정도다. 아마 태극문의 감정선이 기존 작품들보다도 옅은 편이니 방점으로 극단적인 우정을 넣지 않았나 생각한다.


 

조자건의 동문들- 동문들 면면이 대단하다. 각자가 자신있어 하는 분야에선 전부 천하제일이다. 아쉬운건 위지혼의 내용이 좀 부실하단 점이다. 그러나 다른 케릭터들은 충분한 분량과, 충분히 매력적으로 그려냈다 본다. 특히 모용수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천하제일지 답게 모든 상황을 다 손에 넣고 조종할수 있다. 모든 등장인물은 손오공이고 모용수는 부처님인듯 했다. 보면서 재밌는 케릭터라 생각했다


 

이 작품은 신무협을 연 작품이라 말해지듯 충분한 재미를 가지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될 정도니 시대를 뛰어넘는 재미가 있다 말할수 있다. 못보신 분들은 이번 기회에 읽어보거나, 읽으셨던 분들은 한번 재독을 권한다.


 


 

태극문 외전- 태극비전


 

이 작품은 태극문 20주년을 기념하여 발간된 책의 뒷면에 실린 짤막한 작품으로 진산작가 다운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신무협의 시대를 연 작품에 퓨전무협을 헌정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판단이었지만 난 긍정적으로 봤으며 상당히 재밌는 단편이라 생각한다. 줄거리만 얘기하고 마치겠다


 

천하제일인은 어떤 노인에게 비급을 구했다. 그 비급은 너무나도, 너무나도 오래전 태극문이란 문파의 무공수련 방법과 최후의 초식이 적힌 비급이다. 천하제일인은 자신의 손자에게 그 무공을 쥐어줬고, 그 광경을 본 노인은 대대로 내려온 비급을 다른 사람이 익힌단 사실이 속이 쓰린 듯 했다. 그래서 천하를 뒤지고, 또 뒤졌다. 그렇게 그렇게 뒷골목에서 끈기 하나는 대단한 아이를 만났다. 그 아이는 이 무공을 익히면 굶지도, 맞지 않아도 된단 사실에 사실 하나에 만족하며 무공을 죽어라 익혔으니,


 

세월이 지나고 소문이 돌았다. 어느 건달 하나가 고수들을 박살내고 다닌다고, 천하제일인의 손자는 호기심이 생겨 그 겨루었고 무승부가 됐다. 그리고 그 둘은 그 자리에서 친구가 되었다.


 

또다시 세월이 흘러 건달은 흑도영웅이 되고 손자는 백도의 영웅이 되었다. 그 자리에서 그들은 다음에 만날땐 완전히 태극문의 무공을 익혀 겨루기로 약속한다.


 

세월은 흐르고 천하제일인은 슬슬 내려와야 하는 시점이다. 하지만 천하제일인에겐 소망이 있었다.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진법안에서서 육합성만조천하를 펼치면 진정한 궁극의 경지로 오르는 길이 열린다 한다. 손자는 자신의 성취가 부족함을 알았지만 노욕과 가문의 비원은 거스를수 없었고, 그 진법에서 육합성만조천하를 펼치자 이계의 문이 열리고 귀공자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 곳엔 마물들이 가득했다. 흡사 마계같았다. 하지만 경지에 이르지 못했기에 일방통행길밖에 열수가 없었다.


 

또다시 세월이 지나고 건달은 손자가 사라졌단 소문을 듣지만 믿지 않는다. 그 둘은 대결하기로 약속했기에, 그리고 천하제일인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허전했다. 아마 손자가 사라져서 그와 무공을 마주칠만한 친구가 사라져서 일 것이다. 그는 아무도 없는 뜰에서 최후의 절초인 육합성만조천하를 펼쳤다 어딘가에 있을 친구를 위해, 그리고 그 절초는 마계에도 닿은 듯 마계의 하늘이 별빛이 되었으며, 마계에서 본능만으로 살던 귀공자의 마음에도 닿은 모양이다. 그리고 손자는 또다른 형태의 육합성만조천하를 펼친다.



P.S 무협갤러리 TMG님의 제보로 PC통신 관련 정보를 수정하였습니다. TMG님 감사합니다.


모짜르트의 마지막 교향곡들- 북클립 전문번역



 


 

먼저 이 번역은 중역임 원문은 독일어고 이걸 소니쪽에서 영문번역한걸 내가 다시 번역한 것 내 최대한의 능력으로 번역을 하였으나 분명히 원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다름을 알아두길


 

그리고 영어와 같이 병기해 놓은 부분은 도저히 내 능력으론 모르겠어서 냅뒀으니 능력자 분들이 해주면 감사…


 

모짜르트의 마지막 교향곡들-모짜르트의 기악적 오라트리움


 

콘센투스 무지쿠스 빈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음악은 언어다.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가 생각한 모짜르트의 마지막 3개의 교향곡들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는 60여년의 시간동안 모짜르트의 마지막 3개의 교향곡을 탐구하였다. 이 엘범은 이 탐구의 결과를 보여준다.


 

또한 이 모짜르트의 마지막 세개의 교향곡에 대한 녹음은 콘센투스 무지쿠스 빈에서 아르농쿠르의 해석이 들어간 최초의 녹음이기도 하다


 

난 이 연합에 대해 완벽히 확신에 찼다. 천지창조와 같은 작업은 일반적이지 않다. 희귀하단게 아니다. 모짜르트는 굉장히 짧은 시간에 세개의 교향곡을 하나의 거대한 작품처럼 써내려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길 전체는 독립된 부분이 존재하기 전에 존재한다.)

이 명제에 따르면 그는 별개의 교향곡을 작곡한 것이 아니다. 하나의 거대한 작품의 독립된 부분들을 작곡했다.

위와 같은 방법은 원칙적으로 작가나 출판업자가 자주쓰는 방법이다.


 

이번작곡을 모짜르트는 의뢰나 공연의 여부 같은 이런 일을 할 분명한 이유 없이 몇주만에 단숨에 써 내려갔다

모짜르트는 계획이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기악적 오라토리움은 형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아이디어일 뿐이다. 모짜르트 같은 천재는 거대한 형태의 교향곡을 작곡하는데 굴하지 않는다.


 

이 교향곡들은 1788년 여름 모짜르트의 삶에서 가장 생산적이었던, 또한 가장 힘들었던 시기의 몇주만에 작곡됐다.


 

세 교향곡들은 각기 다른 시기에, 그의 모든 작품목록(Verzeichnüß aller meiner Werker)속에, 또한 1784년 2월부터 그의 죽음까지 같은 주제로서 유지되었다.

교향곡 39번(K543)은 6월 26일에

교향곡 40번(K550)은 7월 25일에

교향곡 41번(K551)은 8월에

간단히 말해 우린 세개의 교향곡 작곡이 2달안에 됐다 추측할 수 있다.


 

특히 우린 상기해야 한다. 6월17일 모짜르트는 Tucglauben의 도심지에서 좀더 조용한 Alsergrund의 교회로의 이사가 끝나지 않았음을


 

물론 그는 필요할 때 작곡을 아주 빨리하는 능력을 예시로서 보여준 적 있다. 교향곡 36번'Linz'(K425)는 1783년 단 4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1788년의 여름은 진정으로 예술과 창작의 폭발이라 말하기 적절하다


 

모짜르트의 전기작가들은 이 시기(1788년)의 상황에 대해 어떠한 편지를 참조한다.


 

그 편지는 그의 프리메이슨 동료인 Michael Puchberg에게 보낸 가장 유명하면서도 필사적이며 극비의 상황이 써있다. 그러나 나는 Kenneth Hsu와 Peter Gülke의 예를 봐도 이는 굉장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만일 모짜르트가 돈이 필요했다면 궁중작곡가의 봉급에 더해서 제자들에게서의 수입뿐 아니라 Hoffmeister같은 출판업자에게서 언제나 대출을 받을수 있었다. 그는 궁핍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주어진 편지들의 내용에 따르면 그는 도박빛을 싫어함을 자주, 격양된 어조로 하는 것이 드러난다. 그리고 전기작가들은 그가 왜 돈이 필요한지 거의 설명하지 않는다.


 

그가 프라하나 어딘가를 여행할 때 그는 그 소유의 마차를 사용했거나 누군가 하나를 고용했다.


 

Puchberg의 편지는 그의 모든 재력을 협박범들에게서 숨기기 위한 모짜르트의 또다른 의도를 가지고 쓰여졌다. 그러므로 우린 그가 기악적 오라토리오를 작곡했을때의 어려움이 재정적 어려움이 란 것은 잊어버릴수 있다.


 

마치 바흐처럼 반복해서 질문한다. 어떤 작곡가가 그 자신을 작품에 투영하는가, 그리고 청자들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가


 

난 그시대 청자들의 음악적 지식을 과소평가하며 잘못 생각하고 있다 생각한다.


 

그의 편지에서 모짜르트는 분명히 말한다. 청자들의 유형별로 조금씩 미묘한 차이를 주었다. 그마저도 흔히 말하는 밝은 귀를가진 청자들은 그의 음악작품에서 어떠한 힘을 가진 무언가를 찾았다.


 

모짜르트의 관점을 청자들은 알거나 혹은 다양한 조성에서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모짜르트의 시대에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결과적으로 오늘날 이와 같은 동질감은 사라졌다.


 

그러나 수준이 다름이 분명한 모짜르트의 39, 40, 41번 교향곡들은(원문은 Triptych로 교회나 성당의 제단위에 있는 세폭의 병풍을 의미한다.)여러 다른 수준들의 작품에 뒤섞여 평가받는다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는 그의 주장을 Peter Gülke의 명쾌한 독자연구로 출판된 Zyklus eine Welt: Mozarts letzte Sinfonien에 기반을 두고 있다. 공식적으론 세 교향곡의 연결은 독자연구다.


 

39번의 시작은 다른 두 작품에선 찾아볼수 없는 적절한 세곡 혹은 서주다. 41번의 결말부도 다른 두개의 교향곡에서 찾아볼 수 없다. 다르게 말하면 40번에는 진정한 시작이 없다.

40번의 시작에서 비올라는 반짝이는 ostaticato는 계속 연주될 수 있지만 모짜르트는 single bar로 제한했다.


 

모든 악보마다 청자들이 희미한 이미지를 가지게 하는 것 보다 또렷한 이미지를 가지게 하기 위해 모든 악보의 첫 주제마다 앞꾸밈음이 있다.


 

교향곡 39번의 마지막악장은 모짜르트의 마지막 악장들 중에서도 독특하다. 두번째 주제가 없는 단일 주제이며 가장 동떨어진 조성들을 통해 끝을 향해간다.

엔딩은 마치 먼지구름속에서 갑작스럽게 갑작스럽게 나타나며 명확히 정의되지 않은 채로 교향곡 40번의 탐색을 시작한다.


 

1826년 고연 초기땐 Hans Georg Nägeli는 가장 심하게, 먼지구름과도 같고 돌발적인 엔딩에 대해 혹평했다.


 

한번은 빈에서 40번을 지휘한 적 있었다. 난 명확성을 위해 마지막 부분을 39번의 것으로 교체하여 지휘했다. 이는 관객들에게 즐겁게, 또한 설득력도 줄수 있었다. 대체 40번의 마지막 악장엔 뭔일이 있었던 걸까


 

발전부의 시작하는 부분은 멜로디가 전복되어 이 악장의 핵심부인 하모니는 발로 짓밟혀져 있다.


 

There follows a series of twelve descending fifths, eight of which are in the bass, taking the ground away from the harmony, with the result that we end up in keys that simply did not exist time. And following the total destruction of these two elements, what is to happen next?

(멜로디는 12열로서 5번째의 하강을 따라가며 그 중 8개는 하모니의 밑에 존재했다. 그 결과로 조성이 끝날 때 같은 시간에 끝나지 않는다. 다음에 나오는 두가지 요소에 대해 완전파괴를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들은 땅이 열리고 심연이 응시하는 듯한 감정을 반드시 가졌다 41번의 시작과 함께 빛나는 구원의 감각이 찾아왔다.


 

물론 여기서도 극초반에 음을 쌓아올리는데 어려움이 있다. 예를들어 느린 악장에 들어서면 성역에 들어서고자 하는 두번의 시도는 거절당한다. 미술피리처럼 '꺼지라며'

오직 세번째의 시도에서 성역은 완벽히 열린다.


 

이 작업에 중요한 주장은 이것(기악적 오라토리오)은 정교하며 모짜르트는 세개의 교향곡에 세개의 동일한 테마와 모티프로 다루었다. Peter Gülke가 언급한 원시적인 벽돌들로


 

가끔씩 세 굥향곡들은 명쾌하며 개방적이다. 어쩔땐 미로와 같은 복잡함을 보여준다. 관례적으로 모든 예술이 그랬던 것처럼


 

모짜르트는 La Betulia liberate와 K427을 부분적으로 편곡한 Davidde Peniente를 제외하면 모짜르트는 다른 오라토리오를 작곡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르적으로 오라토리오에 관심이 있었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작업(기악적 오라토리오)에 결정적 역할은 한 사람은 외교관인 남작 Gottfried van swieten이며 1782년 이후 모짜르트는 그의 집에 번번히 방문했고 그는 헨델, 바흐와 함께 작업한 작곡가를 소개시켜 주었으며 그들의 음악에 심오한 흥미가 일어나게 하던 시기였다.


 

1787년 이후 모짜르트는 오라토리오의 숫자를 변경하는데 남작의 관여가 강했으며, 그리고 그 자신이 처음으로 공연의 지휘를 했다.


 

모짜르트가 기악적 오라토리오를 작곡하기 전인 1788년의 봄 그는 엠마누엘 바흐의 Die Auferstehung und Himmelfahrt Jesu를 지휘했고 이런 대곡의 협력은 그의 작곡에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물론 가장 처음 고려해야 할 점은 모짜르트가 처음 기악적 오라토리오란 특별한 형태를 만들어냈단 것이다. 그는 그 누구도 그 전에 간적 없는 길을 갔다.


 

그의 생각과 상황은 전통적 형태의 합창, 아리아, recitutives를 신속히 그가 표현 가능한 음악적 형태로 분배하였으며 그리고 그것들은 서로 충돌하거나 화합한다. 그의 목표점은 전통적인 오라토리오나 오페라보다 훨씬 더 직접적으로, 즉시 실천 가능하다


 

십수년간 이 세 교향곡들을 결합하는 탐험의 여정에서 모든 시도들은 실패했다.


 

어째서 저 테마들과 모티프들은 마치 정체성과 같이 밀접하게 연결되있을까? 여기 있는 수사학적표현들의 언어(음악)들을 철저히 탐구하여 줄곧 사용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39번의 Instrada(16~17세기의 제전 혹은 행진곡 풍 음악)에서 발견했다. 우리 자신이 설정한 험난한 길을 벗어나 심리드라마처럼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불려졌다. 41번의 궁극적이며 전능한 코다의 부분으로 짧게 말해 그 곳은 최후의 목적지이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물론 이것은 불가능하다 말하자면 단단한 이야기 혹은 특정된 '내용'이 이 오라토리오에 있다는 것 아니가 모든 대단한 예술이 그렇듯, Egon Friedell이 언급했듯 애매모호함이있다.


 

이렇듯 모든 청자들은 그 욕은 그녀만의 결론에 이르른다


 

난 이곡이 연결되었다고 단순한 추측으로 간주되길 원하지 않는다 난 이제 확신할 수 있다. 이것은 타당하다. 이것은 교향악적 전집이며 내가 표현한 것처럼 기악적 오라토리오이다. 모짜르트의 음악은 언어의 형태이며 그 자신에 대해 말한다.


 

이것은 학계의 굉장히 구체적인 주장이 아니다.


1 2 3 4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