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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공연 공연


 


 


 


 



 


 

공연명-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지휘자- 주빈 메타


 

오케스트라-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공연장- 서울 예술의 전당


 


 

먼저 이 글을 읽을 때 주지할 점은 글쓴이가 소위 덕통사고를 순간적으로 당해서 오늘 공연과 사랑에 빠진 상태에서 쓴 글이란 걸 알아줬음 한다. 무논리적 해석이 다분하다. 이해해주기 바라며 시작한다.


 

오늘 공연은 개인적으로 절대 못볼줄 알았던 공연이다. 일단 이번년도는 공연 쉬기로 결심했고 비싸기도 엄청 비싸서 직딩이지만(최근에 갓수됐다) 허락 못받으니 포기한 공연이었는데 싹딜이란 좋은 기회를 통해 공연을 보게 되었고 결과는 환상적이었다. 집에 오는 길 내내 정신의 2/3은 놓고 다녔으며 집에 와서 뭐에 홀린 듯 감상문을 쓰고 있다.


 

전체적으로 환상적 공연이라 생각한다. 객원이지만 하모니도 훌륭했으며 특히 타악기의 소리가 한번씩 들릴때마다 내 가슴이 실제로 죄여 들어와서 좀 부여잡았다. 이런 경험은 정말 처음이었다.


 

2부 끝나자마자 한 기립은 나에겐 너무나도 당연했다. 실황으로 처음보는 세계 최정상급 오케스트라에 주빈메타란 마에스트로가 보여주는 해석이란…. 나에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이제 각 곡에서 느낀 점을 써볼까 한다.


 


 

K551 Symphony No.41 Jupiter


 

근래에 중점적으로 듣고 있었던 곡이며 들을때마다 실황으로 보고 싶단 생각을 많이 했다. 맨 처음 이 공연을 예매했을 때 주피터에 눈이 뒤집혀서 예매하겠다고 달려들었다.


 

오늘 공연을 보기 전 실황에서 조차도 나는 악장과 악장간의 템포조절, 그리고 연결성을 굉장히 중시했다. 그래서 흔히 실황에서 나오는 1악장 적당한 템포 2악장 느린 템포 3악장 빠른 템포 4악장 중간 템포 이런식으로 템포가 왔다리 갔다리 하는걸 굉장히 싫어한다.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다. 지휘자와 오케가 능력만 된다면 관계없다. 이런 연주력이면 해석이고 취향이고 하나도 관계없이 그냥 귀가 즐거우니 만족, 이렇게 말할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현장감이란 것도 있으니 지휘자의 조절 나름이다 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수 있게 됐다.


 

실제로 듣는 내내 웃음이 입가에서 가시지 않았고 행복이 마음속에 들어와 있음을 처음으로 느껴봤으며, 곡이 연주되는 내내 이 곡이 끝나지 않았음 좋겠다고 계속 바라며 곡이 끝나곤 충동적으로 이민가고 싶어졌었다.


 

환하고 빛나는 모짜르트였다. 행복한 밤의 시작에 걸맞았다.


 

Rite of spring


 


 

이번 공연중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이다. 일단 이 곡이 굉장히 마음에 든 사람의 의견으로 봐줬으면 한다.


 

저번주 화요일에 처음으로 봄의 제전을 듣고 갤러리에 불평만 올렸다. 괴기하고, 정돈 안되있고, 음이 튄다. 도저히 이 음이 여기서 왜 나와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푸념만 잔뜩 늘어놨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너가 못 외웠다, 발레공연 보고 다시 들어봐야 이해된다 란 의견이 돌아왔다. 그래서 게르기에프, 마린스키의 버전으로 봤는데 뭔가 느낌이 왔다. 그리고 외울 때 까지 들었다.


 

봄의 제전은 현대적인 배경의 곡이 아니다. 원시의 샤머니즘이 살아 숨쉬고 주술사가 화육신으로서 있는시대의 노래이다. 그리고 여자들의 춤이다.


 

고대사회에서 여자는 번성, 풍요를 의미했고 여자들이 모여 땅을 밟고 조상신에게 제사지내며 끝내 풍요를 불러오는 것, 그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식이었으며 스트라빈스키는 이 의식을 환상적인 노래로 다시금 불러냈다. 하지만 오늘 공연은 처음부터 달랐다. 봄이 오는 서주는 같지만 그 뒤 여자들의 춤부터 다른 것이 연상되었따, 가면 갈수록 여자들이 아닌 근육질의 남성이 연상되는 것이다.


 

이번 봄의 제전 공연의 예습을 위해 레틀, 베를린필의 봄의 제전을 레퍼런스로 들었다. 나에겐 한가지 믿음이 있다. 래틀의 현대음악에 대한 이해, 특히 스트라빈스키 초기작의 이해는 현존 지휘자중 최고수준 일 것이란 믿음이다. 그리고 래틀은 나의 기대에 부흥한다 여긴다.


 

래틀의 해석에선 여자들이 느껴진다. 여자들이 땅을 밟고 밭을 가는 시늉, 혹은 춤 사위를 하는 여성스러운 결이 음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하지만 메타의 그림은 완전히 달랐다. 지극히 남성적이며 여성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1부에서 두 부족이 싸운다. 그곳에서 여성이 느껴졌는가? 대지의 춤에선? 2부에서도 그렇다. 표제에도 분명히 여성들이라 적혀있다. 하지만 메타의 곡에선 여성이 나타나지 않는다. 근육질의 남성들이 봄의 제전 즉 의식을 치르고 있을 따름이다.


 

고대사회일수록, 농경문화일수록 모계사회적 영향이 강하다. 그러기에 스트라빈스키도 표제에 분명히 여성이라 명시했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남성을 느꼈을까? 한가지 이유를 적어본다. 템포가 느리다. 지극히 느리다.


 

래틀의 봄의 제전은 34분 20초 게르기예프와 마린스키 발레단의 공연은 약 34분 30초 시간은 못봤지만 대부분 갤러들의 공통적 의견은 40분이다. 지극히 느린 템포가 맞다.


 

난 봄의 제전을 들으며 핵심적인 부분이라 여긴 것이 있다. 곡안의 기괴함, 원초적인 생동감, 모인 군중들이 벌이는 주술적인 모습이 곡안에서 상상이 가능해야 한다 생각한다.


 

이 해석이 마음에 안드시는 분께 질문 드리고 싶다. 템포는 정말 느리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괴함, 원시적인 힘, 역동성이 싸그리 죽었는가? 그럼 음이 얌전했는가? 나에게는 아니었다. 원초적인 힘은 살아있었고 현, 목관부가 세련된 음을 냈지만 타악기의 음이 너무나도 원초적인 힘을 보여줬다 봤다.


 

물론 템포는 너무나도 중요하다. 곡에는 곡만의 어울리는 템포가 있으니, 그래야 곡 안의 역동성도 살아난다 생각한다. 역설적이게도 메타의 해석에서 나는 역동성을 느꼈다.


 

메타의 해석은 지극히 남성적이다. 곡의 표제도 전부 바꿔야 한다. 아니다 배경마자 바뀌어야 한다 본다. 고대의 부계사회에서 봄이 다가오고 근육질의 남성들이 봄의 의식을 치르는걸 연상하는게 지극히 정상적이다.


 

그리고 난 메타의 해석에 완전히 넘어갔다. 땅을 고르기 위한 남자들의 발, 그리고 전체적인 템포와 분위기를 곱씹으며 나아가려는 메타의 그림이 나에겐 너무 와닿은 것이다. 남자들의 역동성이 너무나도 잘 그려졌다.


 

누군가는 그럴수 있다. 너가 클알못이며 단순히 오늘 타악기가 신들리듯 쳐대서 너가 거기에 홀랑 넘어간거다. 오늘 해석 뭣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뽕이 있었기에 메타의 해석에 설득력이 생겼고 난 거기에 넘어갔다.


 

솔직히 그 뽕 못넣는 지휘자 널렸고, 타악기 주자 널렸다. 마지막 부분의 환상적인 타악기 소리, 거기에 안넘어가는 클래식 애호가가 어딨을까 그 부분은 다시 생각해도 환상적이었다. 난 뽕이라도 거하게 맞아서 행복했따.


 

또한 객원이지만 메타와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환상적인 하모니가 너무 좋았다. 이게 호흡이안 맞는거면 난 정말 독일 여행을 가서 얀손스와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공연을 들어야 한다. 거기서 기절하는 한이 있더라도


 


 

엥콜- Swan lake walts 부분


 

난 분명히 2분전까지만 해도 야성이 넘치는 원시적인 공간에 있었다. 하지만 이 곡이 나오는 순간 난 바로 동화속 세상에 빠져들었다. 할말이 없다. 난 동화속 세상을 거닐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기립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마무리하겠다. 오늘 공연에 호불호는 명확하다. 하지만 나 자신은 이 밤을 즐겼을 뿐이고, 영원히 끝나지 않길 빌며 여운을 남긴 체로 감상문을 적기만 할 따름이다. 참으로 행복하고 아름다운 밤이었다.


 

하지만 이 밤에서 깨어나야 한다. 그래야 계속 수준 높은 공연을 갈구하며 애호가를 할 것 아닌가…


 

하지만 분명한건 하나다. 나같이 처음으로 독일 1급 오케를 본 사람에겐 행운의 밤이었다는 것


 

모두의 행운을 빌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이 글을 읽는 모두 평안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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