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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교양적 지식에 대한 대부분 것들의 책 그냥 내 생각







이 책의 경우 다른 이글루스 블로거 분에게 괴델, 바흐, 에셔와 함께 나눔받은 책이다. 그리고 나서 몇개월 뒤 이렇게 시간이 나서 읽게 된 책이다. 나눠주신 분께 감사를 드리며 시작하겠다.



작가는 이 책의 서문뿐만 아닌 가장 서두의 챕터를 독일의 학교 교육의 현실과 그 문제점에 대해 얘가허며 이 책이 있어야할 이유를 논증한다. 또한 학교에서 주는 공식화 된 표현들만 받아먹는 독자들의 권리를 위해서 이 책을 썼다 주장한다.



이 주장은 타당하다.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20대 초반에 이 책을 알았더라면… 란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만큼 다양한 지식들이 작가의 재밌는 필력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꼭 20대 초반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소위말하는 교양있는 지식에 대해 잃어벌니 30대 이상의 독자들에게도 좋으니, 거기다가 책 내용도 어려운 편이 아니다. 슈피겔지 선정 비소설 부문에서 1, 2위를 오랜기간 수성했다고 하니 말이다. 대중성도 담보되어 있다.



이 책은 1, 2부로 나눠져 있다. 1부는 유럽의 역사, 유럽의 문화, 미술의 역사, 음악의 역사, 유럽의 철학자와 그들의 사상 및 이론, 과학적 체계에 대한 개괄적 설명, 성논쟁의 역사로 이뤄져 있으며 2부는 언어구조, 책과 서평에 대한 글, 대표적 서구국가 국민들의 특징, 지능과 재능 그리고 창조성, 교양적 대화 시 피해야 하는 주제, 성찰적 지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는 풍부한 식견으로 여러 교양적 지식을 들려준다. 특이한 점은 책 전체를 통틀어서도 각주가 없단 점이다. 정확힌 각주가 딱

한군데 존재한다. 하지만 이 조차 각주란 무엇인가에 대한 작가의 설명이다, 그럼 작가가 말하는 각주의 설명에 대해 잠시 거론하자면



각주는 본문의 논지의 증거혹은 상반된 견해들이 있는 곳으로 각주가 있어야만 텍스트는 학술적이 된다. 역사적 학문들이 충분히 학술적이지 못하단 데카르트 주의자의 피반에 대한 반작용으로 정립됐으며 텍스트학에서의 검증적 역할을 하며 이는 자연과학분야의 검증실험과 동등한 지위를 차지한다.


각주는 벨의 역사와 비판사전이란 책에서 처음 시작됐고 랑케에 의해 확고히 자리잡았다. 하지만 각주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코드는 명예욕이다. 각주는 학자들의 무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경쟁자를 공격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독자들에겐 각주가 텍스트 본문보다 재밌을 때가 있다.


이런 각주에 대한 설명을 위한 각주를 제외하면 각주가 없다.작가는 이 책을 그저 교양적 지식의 사전정도로 이해하고 쓴 듯 하다.

그리고 2부에서 작가는 교양적 지식을 실제로 어찌 써야 하는지 알려준다. 1부를 농부들이 수확하면 걷을수 있는 수확물이라 한다면 2부는 수확물을 걷어들인 뒤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챕터라 할수있다.



그리고 나는 2부를 좀더 높이 평가한다. 물론 교양적 지식의 사전이라 말할만한 책도 드물고, 믿을만한 작가의 책도 드물다. 하지만 이렇게 실제적으로 교양을 습득한 뒤 어떻게 다뤄야 하며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책도 꽤나 드물다 생각한다.

2부에 대한 흥미를 돋구기 위해 2부의 지능, 재능, 창조성이란 챕터중 일부를 거론해 보겠다.



IQ가 대부분 타고나는 것으로 밝혀지자 엄청난 논쟁이 일었다. 유럽에선 유토피아적 교육환경, 즉 교육을 통해 사람을 고차원의 인식에 이르게 할수있다 여겼기 떄문이다. 아이젠크란 학자는 개인의 지능차이의 80퍼센트는 개인차이다 란 발표를 했고 이는 엄청난 파란을 불러 일으켰다. 강연중 테러를 당하기까지 했다. 폴커 바이스란 학자는 지능에 대한 사회통계적 연구결과를 발표했다가 독일의 인류학회에서 제명되었다. 이것이 1960년대의 일이었다.



(책에는 써있지 않지만 이것에 대한 이유가 있다. 첫번쨰로 IQ가 선천적이며 사회통계적으로 연구한단 것은 어찌보면 우생학적 얘기이기 때문이다. 그 시대 우생학의 패러다임은 우수한 인류 혹은 아주 나쁜 인류를 뽑아내기 위한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둘쨰로 나치시절의 우생학을 연상시킨단 점이었다. 그러기에 학계와 대중의 거부가 심했다. 특히 1960년대는 유럽의 학생운동이 한창이었다. 대중의 엄청난 거부반응은 당연했다.)



그럼 잠시 1800년대 우생학자의 재밌는 연구결과를 보자


터먼은 우생학의 창시자인 프랜시스 골턴의 전기를 읽고 그 사람이 어릴때부터 어마어마한 천재였다는 사실에 감명을 받아 재밌는 연구를 했다. 검증 가능한 기록이 있는 인류역사의 천재들의 IQ 순위를 매겨보잔 연구였다. 리스트는 아래와 같다


1. 존 스튜어트 밀(귀납론을 완성 및 자유론을 창시)


2. 괴테


3. 라이프니츠


4. 크로티우스(국제법 창시자)


5. 토마스 바빙턴 맥컬리(인도를 영국의 식민지로 안정화 시켰으며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에 버금간단 영국사를 저술)


6. 벤담


7. 파스칼


8. 셀링(독일 관념론 완성자)


9. 할러(현대 신경병학 창시자)


10. 콜리지(낭만주의 선구자이며 지금도 문학비평에 영향을 주는 시인)


이중 1위인 밀의 일화를 말해보자


3~7살- 이솝우화, 크세노폰의 아나비시스, 헤로도토슨의 저서, 루키아토스, 이소크라테스 저서 통독


7살- 플라톤 초기 대화 통독, 아버지(아버지도 에덤 스미스와 교류가 있을 정도로 유명한 경제학자)의 감독하 수학연구 시작, 플루

타르크 번역


8~12살- 동생에게 라틴어를 가르치며 고대 그리스로마 유명한 철학자들 책을 대부분 섭렵, 네덜란드 역사서와 로마의 헌법사를 저술


12살- 논리철학연구 시작


14살- 프랑스 몽펠리에 지역으로 유학가서 수학, 논리학, 화학, 철학을 연구 및 학습하였고 벤담의 추종자가 됨 그 이후 아버지와 잡지 창간


정말 말도 안나온다 진짜 천재들이란…


하지만 저자도 곧바로 창조성에 대한 단락을 넣음으로서 창조성을 강조한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다 생각하는 2부를 소개하기 위해 한번 흥미위주의 챕터를 일부 서술하였다. 하지만 이런 흥미성 챕터 이외에

도 언어(독일어)의 구조와 문장구조, 책을 어떤걸 읽어야 하며 문학비평이란 무엇인가 등등을 설명하는 진지한 챕터가 훨씬 많다.



이 책이 좋다고 계속 말했지만 단점도 물론 있다. 책자체가 비평적 부분이 워낙 많아서 넘쳐나기까지 하며 냉소적으로도 보일수 있단 점이다. 자칫하면 교양인들은 전부 비평적이며 냉소적인 사람이란 인상을 줄수있다고 본다. 하지만 냉소적인 점은 적당히 넘기면서 보면 될것 같다.



마무리 하겠다. 초반에 말했듯 이 책은 교양을 쌓고 어찌 활용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또한 자신의 분야는 잘 알지만 폭 넓게 알기 위한 독자들에게도 적합하다 생각한다.


우린 어찌보면 교양을 막연히 생각하고 다가서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이런 책으로 한번 다가가 보는건 어떨까?


덧글

  • 지성의 전당 2019/03/17 22:12 # 답글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데카르트 글이 있어서 댓글을 남겼습니다.
    제가 또 댓글을 달았다면 죄송합니다.
    인문학 책인데,
    저자 진경님의 '불멸의 자각'을 추천해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책 내용 중 일부를 아래 글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제 블로그에 더 많은 내용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정보를 드리는 것뿐이니
    이 글이 불편하시다면 지우거나 무시하셔도 됩니다.
    ---

    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https://blog.naver.com/ecenter2018
  • 최강로봇 도라에몽 2019/03/18 22:16 #

    뭔가 좀 짬뽕인거 같은데... 뭐 이런 댓글이라도 고마워서...
  • 지성의 전당 2019/03/29 16:03 # 답글

    감사합니다~
  • 최강로봇 도라에몽 2019/03/30 09: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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